축구 ‘10번’은 어떻게 스타플레이어 상징 됐을까…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등번호 역사와 의미

입력 2014-05-12 02:04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는 손흥민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할 한국 축구 대표팀에 선발됐다. 레버쿠젠에서 등번호(백넘버)가 7번인 손흥민이 대표팀에선 몇 번을 달게 될까. 정답은 아직 모른다. 홍명보 감독을 비롯해 코칭 스태프가 포지션 등을 고려해 조만간 등번호를 부여할 예정이다.

축구 등번호는 1∼23번, 야구는 1∼99번까지 가능

국제축구연맹(FIFA)은 2002 한·일 월드컵 전까지 A매치에서 뛰는 선수들의 등번호에 대해 ‘1번에서 99번 사이라면 어떤 번호를 달아도 상관없다’고 규정했었다. 하지만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등번호는 1번부터 23번까지만 사용해야 하며 1번은 골키퍼가 달아야 한다’고 규정을 바꿨다. 이에 따라 선발 출전하는 선수들은 1번에서 11번 사이의 등번호를 다는 게 일반적이다. 12번 이후는 대체로 교체선수들이 단다.

다만 FIFA 규정 변경 이전에도 관례적으로 특정 등번호와 포지션이 연관성을 갖기 때문에 관중은 등번호만 보고도 선수에 대한 정보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번호가 낮을수록 수비수 쪽에 가깝고, 숫자가 높을수록 공격수 쪽에 가깝다. 그래서 골키퍼는 1번, 수비수는 2∼5번, 미드필더는 6∼8번, 공격수는 9∼11번을 단다. 손흥민의 경우 최근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11번을 많이 달았지만 14번과 8번 등 여러 등번호를 달기도 했다.

이에 비해 오는 9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야구 대표팀의 등번호는 자유로운 편이다. 올림픽 등 국제야구연맹이 주최하는 국제 대회는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최하는 WBC에서 각국 대표팀은 선수들이 1번부터 99번 사이의 등번호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소속 팀에서 달던 번호를 사용한다.

다만 선수들 사이에 번호가 겹치면 후배가 선배에게 양보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WBC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에서 윤석민(당시 KIA)은 오승환(당시 삼성)과 21번이 겹치자 양보하고예전에 달던 28번을 선택했다. 후배가 선배의 양보를 이끌어낸 희귀한 케이스도 있다. 지난해 손아섭(롯데)은 장원준(당시 경찰청)과 31번이 겹치자 “31번은 제게 특별한 번호이니 양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장원준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손아섭은 자신의 등번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 장원준이 손아섭의 부산고와 롯데 직속선배로 어려운 관계여서 손아섭의 예상 밖 행동은 당시 야구계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등번호 기원은 1929년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등번호는 1910년대 몇몇 미국 대학 스포츠 팀들에서 달기 시작했지만 프로스포츠 효시는 1929년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가 꼽힌다. 양키스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모든 선수들의 등에 번호를 달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양키스의 개막전이 비 때문에 연기되면서 클리블랜드가 등번호를 단 최초의 팀이 됐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홈구장에서만 등번호를 달았기 때문에 양키스가 시즌 내내 등번호를 달고 뛴 최초의 팀으로 기록에 남게 됐다. 프로축구에서는 1928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 첼시의 경기에서 선수들이 등번호를 달았다고 한다. 당시엔 선수 각자에게 번호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뛰는 포지션에 맞는 번호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나갔다. 따라서 양키스가 지금과 같은 의미의 등번호를 도입한 프로스포츠 첫 팀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양키스가 선수들의 등번호를 정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타순에 따라 등번호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3번 타자였던 베이브 루스가 3번을, 4번 타자였던 루 게릭은 4번을 달았다. 양키스가 등번호를 단 것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이후 메이저리그 전 구단으로 확대돼 1937년엔 모든 선수가 의무적으로 달게 됐다. 그리고 타순이나 포지션에 따른 등번호가 아니라 선수 개인이 좋아하는 번호를 갖도록 했다. 축구의 경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국가별로 등록된 선수 22명에게 등번호를 나눠 주면서 선수들이 선호하는 번호를 자유롭게 갖도록 했다.

현재 프로스포츠 종목에서 등번호 관련 규정은 종목에 따라 다르다. 개인의 선택을 최대한 인정한 야구나 농구, 축구에 비해 미식축구와 배구는 제한적이다. 배구는 아마추어나 프로에 상관없이 1번부터 18번까지만 달아야 한다. 미식축구의 경우 공격을 이끄는 쿼터백은 1∼19번,러닝백은 20∼49번,와이드리시버는 80∼89번 등 포지션별로 등번호의 범위가 정해져 있으며 이를 어겨서는 안된다.

축구 ‘10번’은 스타플레이어 상징, 야구는 ‘51번’ 스타 많아

야구와 농구, 축구는 선수들이 등번호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선수 개인사에 얽힌 번호가 많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는 전통적으로 10번이 최고 스타들이 가질 수 있는 등번호로 뽑힌다. ‘축구 황제’ 펠레 때문이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 당시 브라질 축구협회는 선수들의 등번호를 빠뜨린 채 명단을 보냈고, 월드컵 관계자는 자신의 마음대로 선수들에게 등번호를 부여했다. 이때 펠레가 10번을 받게 됐다. 당시 17세로 최연소 출전했던 펠레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때 펠레의 등번호 10번은 전세계 축구 팬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됐고, 펠레가 이후에도 그 번호를 달면서 축구에서 10번 선수는 팀의 핵심인 ‘플레이 메이커’를 상징하게 됐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 프랑스의 미셀 플라티니와 지네딘 지단, 브라질의 호나우지뉴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두 10번을 달았다.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메시와 영국 리버풀의 쿠티뉴 등도 10번을 달고 있다.

7번도 축구에서 인기있는 번호다.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바비 찰튼,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등 특급스타들이 7번을 달았던 이력 때문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맨유 시절 7번을 부착했고 스페린 레알 마드리드로 옮기면서도 7번을 고수했다.

야구는 등번호를 도입한 초기부터 선수 개인의 선택을 중시해 상징성을 강하게 지닌 특정 번호는 별로 없다. 하지만 후배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이 존경했던 선배 선수의 번호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메이저리그에서 51번은 특히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사용했던 번호로 랜디 존슨, 트레버 호프만, 켄 그리피 주니어, 스즈키 이치로, 버니 윌리엄스 등이 달았다. LG의 봉중근이 등번호 51번을 택한 것은 켄 그리피 주니어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