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매뉴얼과 임기응변

입력 2014-05-12 02:09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국민일보는 일본 NHK의 재난보도 방식을 취재했다(2011년 3월 18일자 23면). 그들의 매뉴얼에는 한국 기자가 보기에 생경한 내용이 많았다. ‘재난 지역의 공무원들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 그들의 가족도 피해자일 수 있다… 붕괴된 건물이라도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 소유주가 있다… 심하다, 매섭다, 내가 느끼는 진도는 얼마다 등의 주관적 표현은 쓰지 말라.’

며칠 관찰한 NHK 재난방송의 특징은 5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①앵커는 조용하게 사무적으로 말했다. ②울부짖는 피해자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③사망자 숫자는 보수적으로 집계했다. ④정부 발표를 충실히 전했다. ⑤원전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 닷새 동안은 책임자를 탓하는 보도가 없었다.

이렇게 ‘조용한’ 재난방송은 당시 이재민들의 모습과 닮았다. 쓰나미가 휩쓴 센다이에는 먹을 게 없었다. 이재민 50만명이 충분히 먹을 식료품이 준비돼 있었지만 매뉴얼에 있던 전달 루트가 지진에 모두 차단된 터여서 우왕좌왕했다. 센다이에 파견된 국민일보 기자는 일본인 20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구호품을 제때 보내주지 못하는 정부가 원망스럽지 않은가?” 돌아온 답변은 신기하게 비슷했다. “불만은 없다. 국가 위기 상황이니까. 정부 방침을 잘 따르는 수밖에 없다.”

대지진 앞에 선 일본 언론과 국민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재난의 풍경과 너무 달랐다. 우리는 그런 일본을 ‘매뉴얼 사회’라고 불렀다. 이 말에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던 건 신속한 대처를 가로막는 매뉴얼의 함정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바닷물을 끌어다 원자로를 식히는 방법은 매뉴얼에 없어서 시기를 놓쳤고, 해외에서 날아온 의사들은 일본 의사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활동하지 못했다.

당시 국민일보 기사는 이렇게 정리했다. ‘한국과 일본의 스타일은 정반대다. 이쪽의 장점이 저쪽에선 단점이다. 한국에선 재난이 닥치면 언론과 이재민의 아우성에 떠들썩해지는 대신 뭐가 필요한지 정부에 신속히 전달되고 그만큼 조치도 빠르다. 언론과 이재민 모두 조용한 일본은 지진 현장에 아직도 구호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지만 무질서나 혼란은 찾아볼 수 없다.’

3년 전 우리가 ‘장점’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 사회의 아우성과 떠들썩함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선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이 매뉴얼 사회라면 한국은 임기응변의 사회다. 일본처럼 평소 매뉴얼을 철저히 관리해 위험을 최소화하진 못해도 일단 위기가 닥치면 임기응변일망정 대처와 극복은 ‘빨리빨리’ 이뤄질 줄 알았다. 어린 학생 수백명을 태우고 가라앉는 배 앞에서 이 정부는 매뉴얼도 임기응변도 없이 허둥대기만 했다. 그 민낯을 목격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매뉴얼 사회는 매뉴얼을 만든 사람, 즉 정부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성립된다. 한국은 결코 매뉴얼 사회가 될 수 없는 현대사를 갖고 있다. 한국인은 정부를 믿고 따라온 게 아니라 정부를 이끌어 왔다. 국민이 아우성쳐서 무능한 정부를 몰아냈고, 국민이 또 아우성쳐서 민주화를 이뤘다. 지난 대선에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란 어젠다가 등장한 것도 아우성의 결과였다.

한국 현대사는 국민의 아우성에 정부가 임기응변을 해온 과정이다. 그런 정부가 하루아침에 매뉴얼 정부로 바뀔 리가 없다. 국민이 할 수 있는 건 더 크게 아우성치는 일뿐이다. 20세기에 민주국가를 요구했던 국민이 21세기에 ‘안전한 나라’를 부르짖어야 한다는 게 서글프지만, 뭐 어쩌겠나. 살아야 하는데.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