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그들의 죽음이 다시 사는 날은

입력 2014-05-12 02:02 수정 2014-05-12 09:55


“희생자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부활해야 한다”

주일 아침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적잖은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헌화하는 이들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일그러져 있었고, 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헌화하는 자리에 딱지처럼 접은 편지와 함께 육포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유난히 육포를 좋아했던 어린 고인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한참 먹을 나이에 맞은 이른 죽음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분향소를 나오자 길게 늘어선 나무판에 깨알 같은 글씨들이 그득하다.

“썩은 나라에서 산다는 자체가 너무 부끄럽다.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언론이 막고 나라가 막아도 언니 오빠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인근의 중학생들이 쓴 듯한 메모는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가득했다.

낯이 화끈거렸다. 만으로 몇 달이 부족한 쉰일곱의 언론 종사자, 애들 말대로 ‘꼰대’로 불리는 나에게, 분노의 창끝은 바로 내게 향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젊은 친구들, 특히 10대들을 보면서 가졌던 그간의 적지 않은 편견들을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10대를 포함한 젊은층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사회 이슈를 비롯해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얄팍하다고 봤기에 이번에 이들이 보여준 관심과 분노는 솔직히 예상외였다. 가정마다 격차는 있겠으나 풍요의 시대에 사는 그들 대부분은 물질적인 안락을 누리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고 봤다.

그저 좋은 브랜드의 신발이나 옷가지만 따지고 친구들에 대한 연대감도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주변이야 어찌됐든 학원에 열심히 다녀 좋은 대학에 진학한 후 월급 많은 직장을 구하는 데만 혈안인 줄 알았다. 부모들이 조장했든 본의 아니게 그렇게 사육됐든 간에 그와 같은 흐름이 사회에 만연돼 있어 대한민국의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던 그들이 자기들 스스로 촛불집회를 마련하고 가두시위를 꾀하고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7일자 여성신문에 따르면 일부 학생들은 SNS를 통해 그 안에서만 공감하고 있는 같은 또래들을 향해 “액정 밖으로 나오라”고 호소하고 있다. 액정 안에서만 공감하는 슬픔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못다 한 말들을 적극적으로 하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공분과 적극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조금씩 쌓여가던 10대들의 울분이 세월호의 비극적 상황을 계기로 구체화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어쩌면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목숨을 잃은 어린 영혼들이 10대들의 마음을 울리며 부활하고 있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지 모른다.

희생자들은 정말이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부활해야 한다. 우선 어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입된 생각과 삶의 현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외치는 10대들의 뜨거운 가슴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마땅하다. 더불어 젊은층들의 변화를 바라보는 한국의 기성세대도 그들의 희생을 계기로 기존의 논리와 가치체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간 한국사회가 금과옥조로 삼아왔던 성장지상주의는 이제 더 이상 작동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성찰적 근대를 추구해야 한다. 목적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옳고 그름의 가치보다 고지를 점령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란 생각에 매몰됐던 시대로부터 결별을 다짐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자본주의 탄생 비결을 기독교 윤리에서 찾았던 막스 베버는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끝자락에서 ‘정신이 없는 전문인, 마음이 없는 향락인’이 넘쳐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경고했다. 무감동·무관심의 전문가와 자기만 아는 향락인의 삶은 다름 아닌 성장과 발전만을 강조한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다. 그들의 죽음이 10대들의 가슴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활을 하는 그날, 비로소 우리는 다시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