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안산 스트롱

입력 2014-05-12 02:40

온 나라가 세월호 참사로 아파하던 지난달 22일 미국에서 제118회 보스턴 마라톤이 열렸다. 지난해 4월 15일 결승선에서 압력밥솥 사제폭탄이 터지면서 3명이 숨지고 260명이 다쳤던 그 대회다. 참혹했던 테러의 상흔이 여전한 곳으로 3만5755명의 출전자가 들어섰다. 지난해보다 1만2000여명이 늘었다. 관람객도 평소의 2배에 이르는 100만명이 모여들었다.

테러로 두 다리를 잃은 한 여인은 의족을 한 채 결승선 위에 섰다. 딸과 누이의 손을 잡고 그날 끝내지 못했던 경주를 마쳤다. 그녀는 가슴에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인 두 단어에는 지난 1년간 그들이 겪은 시간과 하고 싶은 얘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같은 날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4명만 살아 돌아온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앞바다는 심장 속 깊이 불덩이를 삼킨 어미와 아비의 ‘눈물바다’였다. 허둥대는 정부, 나만 살자고 어린 목숨을 내팽개친 어른들이 안긴 상처는 대한민국 전체를 슬프게 했다.

그리고 슬픔은 분노가 됐다. 오해와 불신은 덩치를 키우는 분노의 먹잇감이었다. 말문이 막혀 뭐라 말하지 못하는 어른들은 저마다 미안함을 안고 분향소를 찾았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어미와 아비에게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

그래서일까. 떠들썩하던 황금연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환한 햇살 아래로 나서기조차 꺼려졌다. 내 가족의 안녕이 죄스럽기까지 했다. 정부가 민간소비 침체를 걱정할 정도로 전 국민이 아파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어느새 26일이 흘렀다. 참사의 원인을 찾고, 단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참에 국가 재난 대응체계를 새로 짜자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1년 뒤인 2015년 4월 16일에 ‘안산 스트롱(Ansan strong)’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고귀한 생명들이 준 소중한 꾸짖음을 기억하고,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아직도 많은 일이 남아 있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고, 참사를 일으킨 나쁜 어른들에게 벌을 줘야 한다. 허둥대던 공무원과 경찰도 혼쭐이 나야 한다. 썩고 곪은 곳을 도려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정부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해서 미안함과 분노, 슬픔을 치유, 희망, 미래로 바꿔야 한다. ‘안산 스트롱’은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