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위로가 되다] 나의 노래가 세상의 눈물 닦을 수 있다면…

입력 2014-05-10 02:32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해 많은 학생들이 실종되거나 비명에 죽자 세상의 풍경들도 하나둘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전면 결방되면서 브라운관에선 ‘웃음’이 사라졌으며 유명 가수들은 신보 발매를 전면 연기했다. 콘서트나 뮤지컬 같은 문화행사가 취소되는 사례도 이어졌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이전과 달라졌다. 화창한 봄날과는 어울리지 않는 슬픈 발라드 음악이, 심지어 발표된 지 20년도 넘은 곡들이 자주 전파를 탔다.

9일 방송횟수 집계 사이트인 차트코리아에 따르면 참사 다음 주 집계된 4월 3주차(21∼27일) 라디오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한 곡은 김범수의 ‘보고 싶다’였다. 무려 12년 전인 2002년 취입된 이 곡이 또다시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1위는 최근 발표된 이선희의 신곡 ‘그중에 그대를 만나’였다. 아마도 많은 청취자들은 ‘보고 싶다’의 다음과 같은 가사에 공감한 듯하다. ‘울고 싶다 네게 무릎 꿇고/ 모두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면/ 미칠 듯 사랑했던 기억이/ 추억들이/ 너를 찾고 있지만….’

‘보고 싶다’ 외에도 해당 차트 상위권엔 과거에 발표된 노래들이 상당수 랭크됐다.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4위·1989), 신승훈의 ‘아이 빌리브’(5위·2001), 이승환의 ‘가족’(7위·1997)….

기현상이지만 참사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애도 분위기를 감안하면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지금도 이들 노래를 통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참사 이후 이어진 추모의 음악 행렬

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까지 가요계 활동은 대부분 중단됐었지만 일부 뮤지션들은 애도의 마음을 담은 추모 음악을 발표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지난달 25일 내놓은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시 추모곡으로 헌정했던 이 곡을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어 버전으로 재발매해 음원 수익금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재발매와 동시에 각종 음원차트 정상을 차지했는데, 이 노래가 큰 인기를 얻은 데는 가사의 힘이 컸다. 노래는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임형주는 “가사가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낸 비극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큰 사랑을 받게 된 것 같다”며 “그만큼 국민들 상실감도 컸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밴드 산울림 출신 싱어송라이터 김창완은 지난달 28일 자신이 진행하는 SBS 파워FM(107.7㎒)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자작곡 ‘노란 리본’을 공개해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비 뿌리는 아침 눈물로 쓴 곡을 띄워 드리겠다”며 이 곡을 선곡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가사를 통기타 반주에 실은 ‘노란 리본’은 공개와 동시에 트위터와 유튜브 등을 통해 퍼져 나갔다.

이 밖에 작곡가 윤일상 김형석, 피아니스트 윤한 등이 추모 연주곡을 온라인에 공개해 화제가 됐다. 팝페라 가수 이사벨은 ‘다시는’이라는 추모곡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음악은 만국 공통의 ‘힐링’

외국에서도 큰 재난을 겪은 뒤엔 음악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 이후였다. 수많은 팝스타들은 희생자를 위한 추모곡, 혹은 이 사건을 다룬 노래들을 발표하며 대중과 교감했다. 위키피디아에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팝스타들이 발표한 9·11 관련 음악을 헤아려보면 130곡이 넘는다.

추모곡을 거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음악은 영국 가수 엘튼 존이 1997년 9월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애도하며 발표한 ‘캔들 인 더 윈드’다. 이 곡이 담긴 음반은 490만장 넘게 팔리며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 앨범이 됐다. 영국 대표적 차트인 UK차트에선 5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존은 다이애나비 장례식장에서 이 곡을 불러 많은 영국인들 가슴을 적셨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 라디오에 자주 흘러나오는 팝송은 영국 가수 에릭 클랩튼이 92년 1월에 발표한 ‘티어스 인 헤븐’이다. 클랩튼은 뉴욕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을 거둔 아들을 기리며 이 곡을 만들었다. ‘티어스…’ 노랫말에 담긴 애끊는 부정(父情)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 너는 내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천국에서 널 만나면 넌 옛날과 똑같은 모습일까….’

음악의 힘은 어디서 올까

2006년 4월 25일 호주 태즈매니아 지역에서는 광산이 붕괴돼 광부 2명이 지하에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광부들은 지상 구조팀과 교신을 주고받다 14일 만에 구조됐는데, 화제가 된 건 구조 6일째가 되던 날 벌어진 일이었다. 이들은 생활필수품을 주고받을 통로가 확보되자 옷과 치약 등과 함께 미국 밴드 푸 파이터스의 노래가 담긴 아이팟을 보내 달라고 구조팀에 요청했다.

이러한 사례는 음악을 듣는다는 게 절망에 처한 이들에게 큰 힘이 돼줄 수 있다는 걸 방증한다. 이민희 음악평론가는 “음악을 들을 때면 누구나 일종의 현실 도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기분 자체가 힘든 상황을 맞닥뜨린 이들에겐 작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슬플 땐 어떤 음악이 좋을까. 음악치료 등을 통해 환자들의 심리적 회복을 돕고 있는 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의 이소영 센터장은 “현재 자신의 정서와 맞는 음악을 듣는 게 좋다”고 했다.

“이른바 ‘동질성의 원리’라는 게 있어요. 자신의 기분과 비슷한 수준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거죠. 슬픈 상황에서 유쾌한 음악을 들으면 일단 그 음악에 동화되기가 힘들어요. 자신의 기분에 맞는 음악을 찾아 들으며 조금씩 밝은 분위기의 곡들을 섭렵해나가는 게 좋은 방법일 겁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