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세습자본주의
입력 2014-05-10 02:36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3년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빈자의 성자’ 프란치스코를 교황 즉위명으로 택한 그는 여성과 이슬람교도 죄수의 발을 씻겨주고, 병자를 안아주는 등 낮은 곳으로 향하는 소탈하고 검소한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해 수차례 비판을 하면서 마르크스주의자 논란에 휩싸이거나 ‘프란치스카노믹스’ ‘바티칸 경제학’ 등의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교황은 “규제가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며 “완전한 자유방임시장과 투기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42세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론’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피케티는 최상위 1%에 소득과 부가 집중되면서 19세기 말의 세습자본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며 일을 해서 버는 돈은 물려받은 재산이 벌어들인 돈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본이 극소수 부유층에 집중되면 이들이 정치, 정부, 사회에 대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상위 1%의 소득에 대해 80%의 세금을 부과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부자들의 자산에 연 5∼10%의 글로벌 부유세를 물리자고 제안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 30년간 소득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으로 커졌다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매겨야 한다는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OECD는 피케티와 그의 동료가 만든 ‘세계 최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1년 평균 6.5%에서 2012년 9.7%로 늘었지만 소득세는 평균 66%에서 43%로 낮아졌다”며 “조세정책을 개혁하지 않으면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임금 없는 성장’이 가장 심각하다. 기업 수익이 늘었어도 월급쟁이들 지갑은 얇아지고 대주주 호주머니로만 부가 몰리고 있는 탓이다. 15년 전 오너 일가 3세들에게 헐값에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안기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급성장한 대기업 계열사가 올해 안에 상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주주는 가만히 앉아서 최소 2조원 이상 손에 쥐게 됐으니 이만한 ‘돈 놓고 돈 먹기’가 없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