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희생자 유족들, 오죽하면 청와대 찾아갔을까
입력 2014-05-10 02:31
세월호 참사 이후 불신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게 된 배경에는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 또한 책임이 작지 않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속보 경쟁에 매몰돼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오보를 쏟아냈고, 가누기 힘든 슬픔에 젖어 있는 희생자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기보다는 이들을 취재 대상으로만 여겨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회의 공기(公器)이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희생자 유족들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 파면과 사장 공개사과 등을 요구하며 KBS와 청와대를 잇따라 항의방문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족들은 KBS 사장 면담이 이뤄지지 않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청와대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집단행동으로 폭발한 것이다.
진위 논란이 있어 사실을 밝혀야겠지만 한 매체가 보도한 김 국장 발언이 유족들 가슴에 기름을 부었다. 김 국장은 사내 구성원과의 식사자리에서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사실이라면 유족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김 국장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와전됐다”고 해명했으나 이것만으로는 유족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 그가 보직 사임하면서 사장 퇴진을 요구한 것은 말 못할 다른 사정이 있음을 암시한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유족들에게 무엇이 진실인지 밝히는 것이 국민이 낸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정도다.
생때같은 자식과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잃은 희생자 유족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말과 글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넘쳐나고 있다. 희생자 유족들의 요구와 행동이 다소 초법적이고 무리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 전체가 이들을 보듬고 위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