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기도와 분노는 공존할 수 없다
입력 2014-05-10 02:26
분노는 모든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씨름하는 문제다. 4세기 사막 수도사들은 세상의 유혹은 피할 수 있었지만 분노는 피할 수 없었다. 수도원에도 그들을 화나게 만드는 수도사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은둔 수도사라 불리는 수도사들은 동료들을 피해 더 깊은 사막으로 물러났지만 자신의 내면에 여전히 분노가 살아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 옆에는 화를 자극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부실한 물건들이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두꺼운 펜 촉, 무딘 칼, 불이 붙지 않는 부싯돌을 향해 분노하는 자신을 보고 당황했다. 이런 짜증스러운 분노는 기도를 방해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이 말씀에 의하면 기도와 분노는 공존할 수 없다. 분노를 어떻게 다루는가는 수도생활의 성공에서 중요한 문제로서 자연스럽게 많은 가르침들이 생겨났다.
화날 때는 입술부터 다스려야
원로 푀멘의 가르침부터 보면 그는 제자들에게 형제가 마음을 아프게 할 때 심지어 우리 눈을 뽑고 손을 잘라내어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수도사들이 분노와의 싸움에서 항상 이길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푀멘은 만약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가르쳤다.
“좋지 않은 말, 즉 해가 되는 말을 들으면 자신도 상대방에게 악한 말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나쁘게 대우하더라도 보복하지 않고 참는다면 그는 이웃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큰 사랑을 실천한 셈입니다.”(요 15:13).
자신이 앙갚음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은 자신의 뜻과 의지를 버리는 이웃사랑의 길이다. 그러므로 화가 날 때 그것이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지 않도록 마음 안에서 싸워야 한다. 마음을 지키면 입을 열지 않게 된다. 또 다른 한 원로는 “다툼이 사람을 분노케 만들고 분노가 사람을 눈멀게 만들고, 눈이 먼 사람은 모든 악을 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열린 입은 다른 악들이 들어오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분노하여 입술을 다스리지 못했을 때 연이어 오는 결과들은 우리 모두가 체험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일은 수도사들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다. 한 번은 원로 시소에스가 이 일에서 자신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고백했다. “나는 30년 동안 나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 예수여, 나를 내 혀로부터 지켜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나는 매일 그 때문에 넘어지고 죄를 범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수도들에게 절망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했다.
분노는 심판이 따른다
분노를 다스리는 일에 훈련되지 못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화나게 한 사람을 그냥 두지 못한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만든다. 내가 어떤 일이나 말로 남을 화나게 만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막 원로들에게서 배운 존 카시안은 주님의 산상수훈에서 그 답을 찾았다.
주님은 형제에게 분노를 표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되며 형제를 라가, 즉 멍청한 놈이라고 하거나 미련한 놈이라고 거칠게 욕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고 경고하셨다(마 5:21∼22). 내면의 혈기를 따라 말로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살인행위와 같다.
분노에 찬 말은 나의 궁극적인 운명마저 결정하는 중대한 금기사항이다. 주님은 우리가 이 엄중한 심판을 피하도록 다음과 같이 제안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23∼24절)
이 대목을 읽을 때 사막 원로들은 매우 주의해서 그 의미를 파악하라고 가르쳤다. 이 말씀은 내가 분을 내어 누구를 화나게 만들었을 때 적용할 말씀이라는 것이다. 나의 분노로 인해 남을 분노케 했을 때 아무리 좋은 헌물을 하나님께 드린다 해도 열납될 수가 없다.
예물을 드리기 전에 자신을 살피고 잘못된 일이 생각난다면 먼저 가서 화목해야 한다. 상처를 입힌 사람을 찾아가 잘못을 빌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화를 돋운 사람의 의무요 책임이다. 화나게 만든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했어도 상대방은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가 온전한 사람이니 화를 안 내겠지’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막 교부들은 주님의 말씀 중 예물 문제를 그들의 기도에 적용했다. 만약 형제를 분노케 만들고도 감히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반항적인 마음을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수도사들은 기도하기 전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한 형제가 없는지 먼저 살폈다. 형제의 분노를 해소하지 못하면 아무리 기도해도 시간과 힘만 낭비할 뿐이다. 분노를 녹여주었을 때 둘 다 순결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다고 보았다.
혹시 누군가를 분노케 하지 않았는가. 그의 분노가 주님의 분노가 되어 나를 지옥 불에 넣을 수 있다. 용서를 구하는 한 마디 말로 악을 선으로 바꾸자.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