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 北소행 결론] ‘스모킹 건’은 발진·복귀좌표 담긴 비행계획

입력 2014-05-09 03:37


군 당국이 20여일에 걸친 한·미 공동조사를 통해 8일 북한 소형 무인기에 대한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를 확보했다. 이번 무인기는 그동안 한·미 첩보망에 전혀 포착되지 않은 비행체여서 우리 방공망의 허점이 드러났다. 무인기 부품 조달 경로와 무인기에 적힌 숫자 등은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스모킹 건은 발진·복귀 좌표가 담긴 비행계획=소형 무인기 3대가 모두 북한에서 발진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위성항법장치(GPS) 정보가 담긴 무인기 메모리칩의 임무명령 데이터였다. GPS 수신기가 장착된 소형 무인기들은 임무명령 데이터에 의해 발진한 후 입력된 좌표에 따라 비행하면서 사전에 입력된 좌표 상공에서 사진을 찍고 복귀 좌표를 따라 이륙 지점으로 되돌아오도록 설계됐다.

조사팀은 우선 무인기의 비행조종 컴퓨터 메모리칩에서 전체 비행계획 좌표를 확보했다. 또 무인기에 장착된 카메라 사진으로부터 비행경로를 추정한 결과 비행경로와 비행계획이 일치했다. 특히 백령도 무인기는 발진 지점을 포함한 초기 50분간의 비행기록을 저장하고 있었고, 이는 비행계획과 완전히 일치했다. 백령도 무인기는 18~20초 간격으로 119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특히 비행계획 거리가 423㎞에 달해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까지 정찰한 뒤 복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파주 무인기는 7~9초 간격으로 178장의 사진을 촬영했고, 비행계획 거리는 133㎞였다. 삼척 무인기의 경우 비행계획 거리가 150㎞였으나 방향조정 기능이 상실돼 경로에서 150㎞ 이탈한 삼척에서 추락했다.

발진 지점이 확인되면서 북한이 주요 대남 공격 축선을 따라 소형 무인기를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운용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무인기가 발진한 황해도 해주와 개성, 강원도 평강은 북한 최전방 4개 군단 가운데 3개가 주둔하는 지역이다. 백령도 무인기가 이륙한 해주에 사령부를 둔 4군단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개성 인근의 2군단은 수도권을 각각 겨냥한 핵심 전력이다. 산악을 낀 5군단은 특수부대를 통한 기습침투가 주임무다.

◇한·미 첩보망 피한 북한 무인기=군 당국은 북한 소형 무인기가 그동안 한·미 첩보망에 포착되지 않은 비행체라고 결론 내렸다. 한·미는 1990년대부터 북한의 무인기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해 왔지만 이번 소형 무인기는 처음으로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한·미 공동조사 결과 소형 무인기는 영상 송수신 장치를 탑재하지 않았지만 비행명령·자료 송수신, 원거리 자동조종 등 무인정찰기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기능은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국방부는 “북한 소형 무인기는 중량이 10∼14㎏으로 연료통(파주 4.97ℓ, 백령도 3.4ℓ) 크기를 고려하면 비행거리는 280∼400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3대 무인기는 자체 중량이 10∼14㎏이지만 카메라와 낙하산을 제거하면 추가 탑재 중량이 3∼4㎏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이들 무인기에 4㎏의 폭약을 장착해 건물에 충돌시킨다고 가정해도 거의 피해가 나지 않고 살상 범위도 1∼2m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군은 북한이 홍콩을 경유해 중국에서 개발한 무인기를 수입한 뒤 이를 개조하거나 복제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종성 국방과학연구소 무인기(UAV) 체계개발단장은 브리핑에서 “중국의 무인기와 외형이나 기타 제원상 특성이 매우 유사하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중국 무인기 개발 업체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이성열 합참 전략무기기술정보과장은 “중국 측에 질의했는데 해당 회사가 민간 회사이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아 생산 및 판매 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 민간 회사가 최근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한 것은 북한 소형 무인기 침투 사건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중국 당국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 당국은 또 북한 무인기에 적혀 있는 ‘6’ ‘24’ ‘35’의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김 단장은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정확히 모르겠고, 대량 생산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만 설명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