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④] 公기관·협회 자율 부여 官피아 무력화시켜야

입력 2014-05-09 02:45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 폐해를 철폐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양수산부 출신들이 역대 이사장을 맡아온 한국해운조합 사례에서 드러났듯 정부 산하 각종 공공기관과 협회에는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내려가는 일이 ‘코스’처럼 돼 있다. 심지어 장관까지 지낸 한 퇴직 공무원은 두 차례나 산하 기관장을 역임한 뒤 업계로 건너가선 이 기업, 저 기업을 옮겨 다니며 최고경영자(CEO)직을 맡고 있다. 그는 재취업만 다섯 차례다. 스스로 ‘관료였을 때 실세였다’고 자랑하는 한 에너지 공기업의 수장은 기관장만 세 번째다. 부처에서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가면 수차례 재취업이 보장되는 ‘관피아식 특혜’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고시 출신 공무원이 주도하는 이런 ‘그들만의 리그’는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들은 일자리를 보장받는 대신 정부와 민간 사이의 유착에 징검다리가 돼준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보듯 화물 과적, 노후 선박 증축 등 각종 위법적 행태는 이런 유착에서 비롯됐다. 민간으로 진출한 선후배 퇴직 공무원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 또한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원전 부품 비리도 이런 구조적 부조리의 틈바구니에서 일어났다.

국민들은 관피아 틀이 당장 해체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선 공무원의 산하 기관 재취업을 원천 봉쇄하는 법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관피아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다. 역대 정권은 관료의 집단이기주의를 뜯어고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전략을 냉철하게 짜지 않으면 이번에도 열기만 잠시 끓다 식고 말 것이라는 게 행정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새 제도를 만드는 것은 관료”라면서 “깨알 같은 조항을 보지 않고 거대담론만 얘기하다가는 관료들에게 또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공공기관과 협회 등에 자율성을 더 주는 방식으로 관피아의 힘을 빼자고 제안했다. 특히 규제와 안전 기능을 맡고 있는 공공기관, 협회의 자율성과 투명성이 중요하다. 우리 정부 체제는 고도성장기에 짜여 이른바 ‘진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안전 확보에는 그만큼 취약하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부처 일이 진흥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관료 집단의 영향으로 규제 파트는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청와대가 구상하는 국가안전처도 독립적인 규제 기능이 있어야 관피아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