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그대’ 50년 발자취… 잠 못 이루는 밤 함께해준 ‘반백년 친구’
입력 2014-05-09 02:07
시대가 변했지만 변함없는 시그널. 엽서에서 팩스, 인터넷으로 사연을 전달하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따뜻하게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DJ 음성은 그대로다.
KBS 해피FM ‘밤을 잊은 그대에게’(이하 ‘밤그대’)가 9일 방송 50주년을 맞았다. 지상파 라디오와 TV를 통틀어 현존하는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밤그대’는 1964년 5월 9일 라디오서울(RSB) 방송국을 통해 첫 방송됐다가 동양방송(TBC)을 거쳐 80년 언론통폐합 당시 KBS에 흡수돼 오늘에 이르렀다. 69년 첫 방송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와 더불어 한국 라디오 역사의 산증인이다.
첫 DJ인 이성화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70년대 양희은 서유석 황인용, 80년대 송승환 배한성 박중훈 최수종 하희라, 90년대 변진섭 유열 손무현 김지수 김정은, 2000년대 박진희 신애라 고민정 소유진 유영석과 현 진행자인 임지훈에 이르기까지 30여명의 스타들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특히 80년 11월 30일 자정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TBC가 KBS로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 방송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방송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 날 1시까지였지만 자정을 기점으로 TBC 전파송출을 중단해야 했기 때문에 한 시간만 진행됐다. 황인용은 “남은 5분이 너무 야속합니다. 저도 이제 헤드폰을 벗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양방송은 이제 떠나겠습니다”라고 울먹이면서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만 했다.
3개 방송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DJ·PD·작가가 다녀갔고, 청소년 계몽·팝 음악·인생 상담 등 프로그램 성격도 달라졌지만 ‘밤그대’ 제목과 영화음악인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 시그널은 지금까지 그대로다. 2008년부터 연출을 맡고 있는 이상묵 PD는 “이 곡을 왜 골랐는지 무슨 사연이나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수소문 했지만 다들 잘 모르는 눈치였다. 담당 PD 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하나의 전통이 됐다”고 말했다.
‘밤그대’를 직접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이 PD와 임지훈에게 방송 50주년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 PD는 “라디오를 들으려고 집으로 뛰어갔던 추억이 선명하다. 친구 같은 프로그램을 직접 연출하게 돼 정말 기뻤는데 50주년까지 맞아 크나큰 영광”이라고 전했다. 임지훈은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만나는 마음으로 매일 들었던 방송”이라며 “쟁쟁한 역대 DJ 속에 함께 이름을 올려 기쁘면서도 50년이라는 역사에 책임감을 느낀다.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를 넘어 젊은 청취자와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드는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감사합니다 50년’ 부제로 진행되는 ‘밤그대’ 특집 방송은 당초 콘서트를 준비했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한 애도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진행된다. 7일 황인용, 8일 박순천 정경순에 이어 9일에는 80년대와 90년대 두 차례 진행을 맡았던 송승환이 일일 DJ로 나서 음성 자료와 노래로 당시 생생한 분위기를 전한다. 10일에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와 함께 이달 말 공개되는 ‘밤그대’ 50주년 기념 앨범 수록곡을 미리 듣는 시간도 갖는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