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규제개혁·안전 강화 상반된 정책 동시 추진… 효과는?

입력 2014-05-09 03:23


정부가 8일 정부업무평가에 안전 분야를 반영키로 한 것은 ‘고육지책(苦肉之策)’의 성격이 짙다. 세월호 참사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총체적 안전불감증과 무능력이 국민적 질타를 받고 있는 와중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업무평가제도가 여전히 국정과제 중심의 큰 틀을 유지하고 있어 안전 분야 평가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규제개혁과 안전관리 강화라는 상반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고, 부처들이 평가를 의식해 졸속 대책을 쏟아낼 위험도 안고 있다.

◇안전 분야 추가해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 ‘9+1’로 추진=현재 정부업무평가 계획상 비정상의 정상화 부문 평가항목은 9개 분야 96개 과제(핵심과제 64개, 단기개선과제 32개)로 구성돼 있다. 9개 분야는 복지급여 등 정부지원금 부정수급 근절, 공공부문 방만경영 및 예산낭비 근절, 공공인프라 관리부실 및 비리 근절, 공공부문 재취업 개선, 세금·임금 등 상습체납·체불 근절, 법질서 미준수 관행 근절, 각종 사기·불법명의도용 근절, 관혼상제 등 일상생활 불합리관행 근절, 기업활동·민간단체 불공정관행 개선이다.

정부는 이달 중 각 부처에서 제출한 과제를 토대로 안전 분야를 따로 떼어낼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다 해난구조와 자연재해, 각종 시설안전 등 종합대응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8일 “안전에 대한 관심을 고려해 비정상의 정상화 부문 핵심과제로 가져갈 것”이라며 “부처에서 제출하는 과제량도 중요하지만 완성도 등 질적인 요소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2월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처럼 ‘9+1’로 추진하는 방식이다. 당시 정부는 공공부문 개혁과 창조경제 구현, 내수기반 확대 등 9대 주요 과제와 함께 통일시대 준비를 별도 과제로 선정했다.

◇규제개혁하면서 안전관리 강화 가능한가=다만 기존의 평가 틀을 유지한 채 안전 분야를 추가하는 것이어서 안전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 확보가 어렵다. 140개 국정과제 이행 여부가 평가점수의 절반을 차지하고 규제개혁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총리실은 이미 올 연말까지 각 부처의 규제를 10%씩 감축하고 기존 규제 및 미등록 규제를 정비하는 내용의 규제개혁 시행지침을 부처에 내려 보냈다. 부처 입장에서는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안전대책도 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셈이다. 안전 관련 집행실적이 우수한 부처에 확실한 인센티브가 부여되지 않으면 부처가 하는 시늉만 낼 가능성이 높다. 안전에 대한 큰 그림을 고민하지 않고 단기대응책만 제시해서는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당장 안전 문제에 직접 관련이 없는 부처들은 이번 방침에 곤혹스런 표정이 읽힌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실을 중심으로 재난안전 예산 관련 대책을 과제 제출용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안전 대책을 점수 평가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고 본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안전은 부처별로 관련성이 다른 만큼 점수 평가는 형식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며 “안전과 관련해 꼭 필요한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정부 산하기관에 대한 안전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