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진 자’ 기독교 메시지 바탕… 따뜻한 창작 뮤지컬 ‘사랑하니까’

입력 2014-05-09 02:43


남에게 빚지게 해야 살 수 있는 대부업자 강동찬.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모태 솔로’란 소리를 들어도 연애조차 안하며 살아간다. 그에게 참한 여자 오로지가 나타난다. 돈 많은 집 딸이라면 강동찬 입장에서 ‘인생 역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웬걸, 홀아버지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대출을 받을까 말까 늘 고민하는 여자다.

뮤지컬 ‘사랑하니까’의 줄거리다. 일별만 해도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있다.

7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대학로뮤지컬센터에 몰린 관객은 차분하게 뮤지컬을 즐겼다. 블록 버스터급 대작도 아니고, 스타 연예인이 출연하는 것도 아닌 중극장용 뮤지컬. 이 같은 통속적 시놉시스로 자극적 맛에 길들여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뮤지컬 팬들은 작품의 수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출연 여부에 쏠려 이같이 ‘볼거리 없는’ 뮤지컬은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현실이다.

한데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미소가 여기저기서 조금씩 새나오더니 공감하는 웃음으로 이어진다. 연변녀 역 장희아의 재치 있는 대사가 관객의 허리를 곧추 세웠다. 그리고 강동찬(송욱경)과 오로지(이명화)의 사랑이 어긋나기 시작하자 안타까운 한숨이 흘렀다.

강동찬이 “나 여기 있어요. 우리 만날 시간 그렇게 다가오고 있는데…내 운명의 그대, 꿈이라면 깨어나지 말기를…”이라는 세레나데를 부르자 오로지 역시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은 또 왜 이리 부신거야”라며 받는다.

이 뮤지컬은 해외 라이선스 작품을 바탕으로 스타 마케팅에 주력하는 한국 뮤지컬 현실과 동떨어진 창작극이다. ‘생활 뮤지컬’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적합할 듯싶다. 만화 원작의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소외 노인의 삶과 사랑을 다루었듯, ‘사랑하니까’는 가계부채에 허덕이는 우리네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제작자 및 연출자의 ‘철학’이 엿보이는 드문 역작이다.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앞세운 대형 뮤지컬과 차이가 난다.

특히 오로지라는 캐릭터가 따뜻한 스토리를 즐기는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가계부채 1000조 시대, 그러나 ‘남에게 빚지고 못하는 여자’ 오로지는 존재 자체로 선실(船室) 공기를 환기시켜 버린다. 카드 한 장 갖고 살지 않는 사랑스러운 여인. “사랑의 빚진 자 되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충실히 따르나 아버지의 오랜 병원 생활로 대부업체 문턱을 넘어야 하는 유혹에 빠진다. 그들 외에도 ‘연변녀’ ‘미스킴’ 등의 캐릭터는 ‘사랑은 대출로 말한다’는 우리네 불편한 진실을 얘기한다.

관객 나연우(서울 마포구 상암산로)씨는 “요즘 뮤지컬은 극장을 나설 때 내 삶과 동떨어진 뮤직 비디오 한 편 본 것처럼 여운이 남지 않았는데 ‘사랑하니까’는 노래극의 참맛이 묻어나서 좋았다”고 말했다.

‘사랑의 빚진 자’라는 기독교적 메시지가 유난스럽지 않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6월 8일까지.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