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선조들의 삶+시인의 상상력… 소설로 복원된 ‘반구대’

입력 2014-05-09 02:33


시인 구광렬(58·울산대 중남미스페인학과 교수·사진)이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반구대’를 찾아간 것은 2007년 5월이다. 망원경으로 태화강 상류지역에 있는 반구대를 살피던 그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반구대 절벽의 고래나 멧돼지 그림은 과연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새겨 넣었을까?” 그 후 몇 차례 더 반구대를 찾아간 그는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구광렬의 첫 장편 ‘반구대’(도서출판 작가)는 BC 4000년경 신석기 후반을 배경으로 누가, 무엇을 위해 암각화를 새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때는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의 전환기. 족장을 부족회의에서 선출하는 방식이 지양되고 세습의 형태가 고착화되려는 기미가 보이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부족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부락은 급기야 긴장과 갈등에 휩싸인다.

족장은 자신의 피붙이인 그리매와 큰주먹 가운데 힘은 세나 영리하지 못한 큰주먹에게 족장 자리를 물려준다. 그러나 부락민의 수가 급증해 식량난을 겪게 된 큰주먹은 힘은 약하지만 영리한 그리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매는 그 옛날 우연히 떠내려 온 고래 한 마리로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곤 고래를 잡자고 한다. 단순한 통나무배에서 진일보한 배를 고안하고, 잡은 고래를 쉽게 끌고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구(浮具)를 만들고, 청동으로 고래를 잡기 위한 미늘을 만든다. 고래잡이에 성공하자 부락엔 이주민들이 늘어나지만 모든 게 그리매의 덕임을 알고 있는 큰주먹은 그리매에게 묻는다. “왜, 애써 이룬 것들을 나에게 돌리나?” 그러자 그리매는 답한다. “그저 바위에다 그림만 그릴 수 있게 해 다오.” 그날 이후부터 그리매는 청동 미늘을 펴서 부락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암벽에다 남기게 된다.

“그리매는 마지막 새김이라는 생각에 온갖 것들을 그려냈다. 발가벗고 남성을 곧추세운 채 딩각을 부는 사내, 분수처럼 물줄기를 뿜어내는 고래. 배 부분에 얼기설기 주름이 잡힌 고래. 잡은 고래를 묶어서 끌고 오는 배. 배는 반달처럼 앞뒤가 들려지게 그렸으며, 배와 고래를 연결하는 밧줄은 가늘고도 얕게 새겼다.”(333쪽)

소설 ‘반구대’는 이렇듯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의 삶이 시인 특유의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덧입혀져 재현된다.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반구대의 세계문화유산지정을 앞둔 시점에서 구광렬에 의해 복원된 소설 ‘반구대’는 반구대 암각화에 관한 최초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