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밀린 숙제 한꺼번에 하듯이 안전 다뤄서야
입력 2014-05-09 02:31
정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정부 부처 업무평가 항목에 안전 분야를 추가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일보 취재결과 국무총리실은 지난달 말 올해 정부 업무평가에 반영하겠다며 42개 부처에 안전 관련 과제 발굴 실적을 이달 말까지 제출하라고 지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총체적 안전 불감증과 무능에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는 움직임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증진시키는 일을 부처 간에 경쟁적으로 급속히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안전 분야를 정부 업무평가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발상 자체를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업무평가 대상 가운데 통일부, 기획재정부 등 안전과 관련성이 거의 없는 부처들도 있다. 안전의 증진은 부처 간 경쟁을 통해 각자 추진하는 것보다 범부처적, 산·학·정(産·學·政)통합적,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더 효율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예컨대 안전문화와 훈련체계의 확립, 안전 관련 전문가의 육성과 채용, 안전관리 시스템의 고도화 등의 과제가 그렇다.
또 안전을 비정상의 정상화 부문에 포함시킨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당초 총리실은 세월호 참사 직전인 지난달 15일 발표한 올해 정부 업무평가 시행계획에서 평가 부문을 국정과제(50점), 규제개혁(25점), 비정상의 정상화(25점) 등 3개로 잡았다. 안전 과제가 비정상의 정상화 부문에 포함되면 이 부문의 평가 분야는 10개로 늘어난다. 즉 안전 분야의 평가 배점은 25점의 10%, 즉 2.5점에 불과하다. 따라서 각 부처들의 안전 과제 발굴 노력이 그저 보여주기를 위한 ‘쇼’에 그칠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안전 분야를 정부 업무평가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다른 평가 부문인 규제완화와 상충하는 문제도 있다. 안전 증진 조치들은 규제 강화로 이어지는 만큼 일부 부처는 규제강화와 규제완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안전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처 간 경쟁이나 평가보다 훨씬 더 큰 틀의 독자적 청사진, 그리고 관련 예산 증액, 조직 혁신, 공무원 부패 척결을 포함한 실천 프로그램들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