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손 드는 용기
입력 2014-05-09 02:24
나무의자에 꼿꼿이 앉아 열중쉬어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초등학교 1학년 때 최고 모범생 자세였다. 어느 날인가 배가 살살 아파왔다. 비실비실 식은땀이 나고, 양손을 비틀며 지옥과 천당을 오가길 몇 번. 수업은 한창이었고 도저히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결국 옷에다 대변을 보고 말았다. 장이 꼬이는 통증보다 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 앞에서 손 드는 일이 더 두려웠다.
거의 10여년간 분당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다.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은 말만 좌석인 버스에 선 채로 한 시간을 꼬박 가야 했다. 정원의 두 배 이상을 태운 버스는 늘 숨통이 막혔고, 옆 사람들과 몸싸움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 꾸역꾸역 사람을 태우던 기사님이 “뒤로 좀 가세요!”라고 크게 외쳤다. 가뜩이나 공간이 없어 몸을 포개다시피 한 상태였는데, 한 승객이 “제발 우리를 짐짝 취급하지 마시오!”라고 항의했다. 순간,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가만히 있었다. 속마음을 대변해주어 시원하다기보다 고요함을 깨는 그 소리에 민망해하는 분위기였다.
분명 운행 당국에 이러한 위험과 불편함에 대해 항의한 이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버스가 시커먼 연기를 내며 고속도로 한가운데 멈추어 서도, 많은 사람을 태우고 흔들흔들 과속으로 달려도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 나와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위험천만한 버스에 나를 맡기는 일보다 더 망설여졌다.
세월호 참사 직후, 서울행 광역버스들이 ‘좌석’을 고수하며 승객을 태우지 않아 출근길에 발이 묶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최근 이러한 과다승차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행이며 동시에 씁쓸하다. 생명과도 직결되는 불편함을 ‘인내하며’ 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10년이다. 가만히 있지 말라, 300명이 넘는 생명을 잃고 나서야 이 한마디를 우리의 몸과 가슴에 뼈아프게 새기게 되다니. 가만히 있으라는 기만적인 지시가, 배의 과적 등에도 가만히 있었던 책임자들의 안일함이 불치의 상처를 내고 말았다.
가만히 있지 않는 것, 그것도 습관이고 훈련이다. 작은 소리로라도 나와 우리가 처한 불편함과 부당함, 위험 앞에 손 들고 말하여 고쳐가야 한다.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면 함께 큰소리를 내야 할 때 정작 우리는 가만히 있게 될 테고 또다시 비극은 되풀이될 테니까.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