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도원욱] 치유의 시작, 공감
입력 2014-05-09 02:31
열린 마음과 용기, 인내 필요
유튜브에서 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보았다. 하이디라고 하는 미국의 보안관 출신으로 프로파일러 훈련을 받은 여성이 반려동물을 비롯하여 갖은 동물들과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런 분들은 소위 애니멀 커뮤니케이터(Animal Communicator)라 불린다.
하이디씨의 대화를 필요로 하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다. 하이디씨는 그들을 찾아가 마치 사람에게 하듯 인사하고 왜 먹지 않으며, 사람을 피하며, 때론 주인까지도 거부하거나 털 색깔이 바뀐 이유까지도 알아낸다. 그녀는 슬픔을 느낄 때는 그저 눈물을 보이고 또 기쁠 때는 동물과 함께 웃는다.
그런데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해 온 주인들은 하이디씨가 대화를 한 후 전해 주는 말을 즉각 알아듣고, 미안함과 안쓰러움의 눈물을 보이거나 고마움 혹은 사과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각각의 동물들이 애착하는 장난감이나 옛 주인의 물건을 찾아주는 등의 작은 소원을 들어준다. 이 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몇 년씩 혹은 몇 달씩 등을 돌렸던 동물이 주인을 향하여 다가오고, 걱정스러웠던 증세가 멈춰진다. 때론 시간이 경과되면서 질병까지도 치유되고 원래의 털 색깔을 되찾게 된다!
함께 울며 주님 앞으로 나가야
우리도 뼈아픈 심정으로 이 달을 맞이하였다. 그 이유를 이 지면에 차마 내뱉지도 못하는 그 이유를 독자들이 무엇보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설령 천 마디 위로의 말을 한다고 한들 자식 잃은 부모들의 심정을 손톱만큼도 달래 드리기 힘들 것이다. 사실 어린이날 그리고 어제 어버이날마저 마음이 무겁고 염려스러웠다. 그렇지만 3면이 바다인 이 나라 어디든 리본이 매이고, 유족들을 위한 기부와 조문 행렬이 이어지며, 예정되었던 공연이 연기 혹은 취소되며, 방송사들도 오락물 방영을 자제하는 등 전 국민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희미하게나마 소망을 느끼게 된다. 분노와 원망까지라도 아픔과 상실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국가와 사회에만 치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정과 개인에게도 치유와 공감을 위한 태도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난파당해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가정들에 치유가 임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우자와 자녀들이 무엇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는지, 왜 아픔의 증세를 끊임없이 보이고 있는지에 관해 끝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용기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얼마 전 ‘아내와 귤’이란 제목의 글이 인터넷 SNS와 블로그마다 도배된 적이 있다. 3년째 이혼 위기를 맞은 한 남편이 결혼 전 아내가 퍽이나 좋아했던 값싼 귤 한 봉지를 무심코 사다가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아 그 귤을 맛나게 까먹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아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흔하디 흔한 귤 한번 제대로 사다 주지 못하였음을 깨닫고 반성하여 이혼의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고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분의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이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광야를 가득 메운 주린 자들을 기적으로 먹이신 것은 목자를 잃고 유리하며 기진한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느끼셨기 때문이었다(마 14:14).
많은 말보다는 서로의 작은 아픔까지도 공감하려는 노력이 치유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조차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는 유족들과 함께 울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수 되었던 우리를 자녀 삼으사, 우리의 한숨 소리도 들어 주시기 위해 성령을 주셨다. 우리의 아픔을 공감해 주시기 위한 최고의 선물, 기도를 주셨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아들을 잃어야 하셨다.
도원욱 한성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