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재난대책기관 제대로 신설하려면

입력 2014-05-09 02:20


“국민 신뢰 받는 명망가와 전문가가 컨트롤타워의 위상 임무 기능 결정토록 해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대응체계의 허술함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안전행정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뒤늦게 구성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각 부처가 우왕좌왕하다 못해 지리멸렬한 작태까지 보였다.

승객 구조와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안행부 국방부 해양수산부 교육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이 각자 엇박자를 내고 무기력함을 드러내면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듯 새로운 재난대책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 박근혜 대통령,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차례대로 대안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20일 “각 부처의 재난안전관리 기능을 떼어내 총리실 산하에 국가재난안전관리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아이디어 차원의 발언인 듯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내각 전체가 국가 개조(改造)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이고 철저한 국민 안전 대책을 마련해 달라”면서 “대형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총리실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 조직을 거느린 통수권자의 발언인 만큼 일정 시일이 지나면 박 대통령의 구상대로 국가안전처가 신설될 가능성은 높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구상을 신뢰하지 않았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지난 6일 여·야·정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안전한 대한민국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안 대표는 “6월 국회에서 4·16 참사 국정조사특위를 구성하자”며 “조사특위는 진상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안전한 대한민국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입법절차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가안전처 등의 즉흥적 대책을 내놓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안전한 대한민국 위원회’의 결론을 수용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대본을 대체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데는 많은 국민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컨트롤타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고 광범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집권층과 야당이 자기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공무원들이 뚝딱 만들어내는 컨트롤타워는 중대본의 재판이 되기 십상이다.

김·안 대표는 시민사회까지 포함한 범국가적 위원회라고 포장했지만 조사특위가 정치인 주도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시민사회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조사특위가 내놓는 ‘안전한 대한민국 위원회’도 그들만을 위한 위원회가 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은 9·11테러를 수습하면서 미국은 초당적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20개월 동안 조사활동을 벌여 방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 행정부 안에 흩어져 있는 대(對)테러기능을 통합하기 위해 국토안보부를 신설하는 데 14개월이나 걸렸다. 22개 정부 조직에서 18만명을 흡수했다. 그만큼 국민적 총의를 모으고, 명실상부한 부처를 탄생시킨 것이다.

우리도 미국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국민 사이에는 공무원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불신감이 팽배하다. 국가 발전과 국민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정쟁(政爭)으로 날밤을 지새우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배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주도하고 국민이 들러리를 서는 상태로는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만들 수 없다. 국민이 신뢰하는 명망가를 위원장으로 하고 양심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과 정치인은 추진위가 ‘백년대계’를 짤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된다. 이 추진위가 외국 사례까지 충분히 검토한 뒤 재난대책기관의 위상과 임무, 기능과 역할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졸속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