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고통을 공감하고 돌보라… 그게 민주주의

입력 2014-05-09 02:27


돌봄 민주주의/조안 C. 트론토/아포리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활동 영역을 공적인 토론과 결정이 이뤄지는 ‘폴리스(polis)’와 사적인 살림 영역을 의미하는 ‘오이코스(oikos)’로 분류한 이래 인류는 늘 공사를 구분해왔다. 특히 서구사회에선 19세기 들어와 공적 영역은 남성의 몫, 사적 영역은 여성의 것으로 분류되면서 공사 구분은 성차별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미국 미네소타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동안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돌봄(caring)’을 이제는 정치 영역에서 다뤄야한다고 주장한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그곳에 가면 당신을 맞이해주는 곳”이라고 노래했던 가정은 더 이상 그런 돌봄의 기능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가정에서 제공되던 돌봄의 기능은 학교, 병원, 호스피스 병원과 양로원, 장애인을 위한 각종 시설, 장례식장 등으로 다양하게 떨어져나갔다.

저자는 특히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에서 ‘가정(집)’에 대한 개념과 의미가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집은 안전한 곳이 아닐뿐더러, 각종 모기지 대출 등을 동원해 최대한 현금화할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제 가정에서의 ‘돌봄’은 사라졌고, 이제 그것을 대신해 사회적 차원에서 ‘함께 돌봄(with caring)’을 모색해야하는 시점이 됐다. 그동안 여성주의 정치학에서 주로 다뤄졌던 개념을 인간으로 확장해서 포괄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돌봄의 책임과 그것을 배분하는 일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슈가 돼야 한다고 말하면서 저자는 그동안 돌봄의 문제가 어떻게 방치돼왔는지 들여다본다. 사적인 문제이니 나 스스로만 잘 돌보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기돌봄형 무임승차’부터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시장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스트랩형 무임승차’ 등 5가지 유형으로 조목조목 분석한다.

저자는 “돌봄 책임 분담의 임무는 기존의 제도, 가족과 가정, 시장, 또는 정부 관료와 정책에 맡길 수 없다”며 “민주시민이 함께 나서서 ‘함께 돌봄’을 정치적인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돌봄을 공적인 가치로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전제로 모든 사람이 평생 충분한 돌봄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 나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돌볼 권리가 있다는 점을 꼽는다. 또 이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보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판단을 하는 공적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돌봄이라는 개념이 다소 추상적이고 감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이 허황된 소리가 아님은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가족 내 치매 환자의 간병 문제, 가사도우미와 산후도우미, 무상 보육, 기초노령연금과 장기요양보험 등 개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돌봄과 관련된 문제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은 존재한다. 돌봄을 위한 충분한 자원을 제공하고 우리의 돌봄 책임을 재검토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데 다시 한 번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뢰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불평등의 정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이를 위한 진정한 자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희강·나상원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