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③] 노동자 안전 등한시한 ‘빗나간’ 돈벌이… 대형 사고 부채질

입력 2014-05-08 03:15


매년 4월 28일은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이 정한 산재노동자의 날이다. 1993년 태국의 장난감 공장 화재로 숨진 188명의 근로자를 추모하기 위한 날이다. 근로자들이 제품을 훔쳐가는 것을 우려한 관리자가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일을 시키다 대형 참사를 빚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는 2012년 9월 이후 14명의 근로자가 숨졌다. 가스누출, 추락 등이 원인이었고 사망자 대부분은 하청업체 근로자였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사업장에선 지난해 1월 작업 도중 유독가스인 불산이 누출돼 하청 근로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사고 발생 후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나선 결과 현대제철에선 두 차례 점검에 1573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사업장에선 2004건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해인 산업재해가 그칠 줄 모른다. 더구나 국내 굴지의 대기업 현장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이윤과 효율성에만 골몰한 기업들이 근로자의 안전은 뒷전에 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윤을 늘리기 위해 평형수를 덜어내고 화물 적재량을 늘린 세월호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건설 현장에선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제조업에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공정 속도를 높인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설비투자와 적절한 휴식시간은 비용으로만 취급되기 일쑤다. 유해가스를 취급하는 등 위험한 업무는 하청업체에 맡긴다. 저가 수주에 매달린 하청업체는 근로자 안전에 충분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러니 대형 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12년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에서 20대 근로자 2명이 용광로 쇳물을 뒤집어쓰고 숨졌다. 이 회사에서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2∼3건씩 산재가 발생했다. 당시 노동부는 이 회사 안전보건 관리책임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재판을 해봤자 실형이 나오지 않을 게 뻔하니 구속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전관리 책임을 소홀히 하는 기업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근로자 산재사망 사고 발생 시 벌금형 없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산재사망가중처벌법’을 발의했다.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은 근로자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범죄를 저지른 기업은 피해 근로자에게 사고로 인한 손해의 3배 이상을 배상하는 내용을 담은 ‘기업살인법’을 발의했다.

영국은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을 제정했다. 기업이 근로자 또는 공공에 대한 안전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기업에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망 사고를 일으킨 기업에는 상한선 없이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안전관리에 실패하면 벌금 폭탄을 맞고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실제로 천문학적인 벌금을 받는 기업들이 나왔고 영국의 산재 발생 비율은 해마다 떨어졌다.

안전을 소홀히 한 대가는 크다. 2012년 산재보상금으로 지급된 돈은 3조8000억원에 이르고 간접 손실액은 15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산재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같은 해 노사 분규에 따른 근로손실일수의 56배에 이른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