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③] 재난관리를 ‘乙’로 보는 예산 편성… ‘人災형’ 참사 되풀이
입력 2014-05-08 03:17
③ 성장만 있고 안전은 뒷전인 나라
그동안 재난 관련 예산은 나라살림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경제성장률이나 재정 지출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현상유지에만 급급했다. 태풍과 호우 등 자연재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처럼 눈에 잘 띄는 사안들에만 신경쓰느라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허둥대 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통합적인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재난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소극적인 재난관리 투자, 치안의 하위 범주로 전락=정부는 늘 사전 예방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재난관리 투자에는 인색했다. 향후 5년간 재정지원 방향을 담은 중기 국가재정운용 계획을 보면 재난관리 분야 연평균 투자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2009년과 2010년에는 향후 5년간 예산을 각각 0.5%와 0.1%씩 늘리는 데 그쳤다. 지난해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후 작성된 2013∼2017 국가재정운용 계획에서는 되레 관련 예산을 연평균 4.9% 줄이기로 했다. 반면 같은 기간 총지출은 3.5% 늘어난다.
정부의 이 같은 인식은 재난관리가 공공질서 및 안전 분야의 하위 범주라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공공질서 및 안전 분야에는 경찰 관련 예산이 가장 많다. 해양경찰과 검찰, 헌법재판소 등이 같이 묶여 있다. ‘4대 사회악’(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척결 등 법치와 민생치안 역량을 강화하는 데 쓰는 예산이다. 해경 예산의 중점 지원 방향도 해상안전 관리체계 구축보다 해양주권 수호 차원의 경비역량 강화에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재난관리 분야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올해 공공질서 및 안전 분야 예산은 지난해보다 5.1% 늘었지만 재난관리 예산은 지난해보다 1.6% 감소했다.
특히 정부 입맛에 따라 예산이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았다. 재난관리 예산은 2008년 3758억원에서 2009년 7194억원으로 급증한다. 전임 이명박정부가 4대강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와 맞닿아 있다. 이와 맞물려 소하천 정비사업 예산은 2008년 668억원에서 2009년 1901억원(추가경정예산 기준)으로 늘어난다.
◇그때 그때 터진 사고 대응에만 급급, 통합 시스템이 없는 예산 편성=안전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지 못한 점도 한계로 꼽힌다. 1993년 서해페리호 참사나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10년에 한 번꼴로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대형 사고나 피해가 발생해도 개별 분야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했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는 해양오염 사고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이후 정부의 중기 국가재정운용 계획에는 해양오염 사고 대응이 중점 과제로 선정된다. 전임 정부 시절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이슈로 떠오른 이후에는 어김없이 해경의 해양감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 과제로 선정됐다. 태풍 ‘곤파스’가 막대한 피해를 몰고 왔던 2010년처럼 대형 태풍이 지나간 후에는 자연재해 예방 예산이 늘어나곤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해묵은 안전불감증이 수년간 반복되는 와중에도 정부는 사회적 재난에 대응하는 방안에 대해선 침묵했다. 익숙한 사안에는 예산이 편성됐지만 대형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한 인명 구조를 할 수 있는 시스템에는 투자하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국가안전처를 설립해 통합적 재난대응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큰 그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사회적 재난과 자연재해, 해양오염 등 모든 재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정부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과감한 재정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분야에 치우친 안전 개념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안전에 위협이 되는 모든 요소를 분석하고 맞춤형 훈련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영훈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안전공동체센터 소장은 7일 “해난구조뿐 아니라 재난관리 전반에 실질적인 훈련을 통해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며 “정부가 먼저 통합적인 시각을 갖고 분야별로 위험 요인이 되는 소스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