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락 총리 해임 결정] “사법 쿠데타” 반발… 친·반정부 시위대 충돌 우려
입력 2014-05-08 03:40
태국 헌법재판소가 7일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에 대해 제기된 권력남용 혐의를 인정해 잉락 총리와 9명의 각료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해 11월부터 계속된 태국의 정국 혼란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잉락 총리를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대가 헌재 결정을 ‘사법쿠데타’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정부 시위대와의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장 오는 7월로 예정된 총선 재실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오빠 사면안이 결국 독으로=차룬 인타찬 헌재 재판소장은 전국에 TV로 90분간 중계된 재판을 통해 “잉락 총리가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했다”며 “9명의 재판관은 만장일치로 잉락 총리의 해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잉락 총리의 직접적 낙마 원인은 2011년 야권으로 분류되는 타윌 플리안스리 전 국가안보위원회(NSC) 위원장을 경질한 데 따른 직권남용 혐의다. 이 과정에서 공석이 된 경찰청장 자리에 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처남을 임명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 잉락 총리는 6일 헌재에서 “플리안스리 전 NSC위원장에 대한 인사권은 정당하며 집권 푸어타이당도 이득을 본 것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지난해 11월 하원에서 탁신 전 총리의 사면 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킨 것이 헌재 결정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여론의 역풍을 맞아 법안을 철회하긴 했지만 이를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되고 잉락 총리가 버티면서 결국 헌재가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잉락 총리의 낙마로 친정부 진영은 대대적인 반대 시위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반정부 시위대 역시 지난 5일부터 시위를 재개한 상황이라 이들 간 우발적인 유혈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득권층의 계속된 저항=헌재의 이번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법관과 고위 관료 등 기득권 계층으로 대표되는 반탁신 세력은 헌재를 비롯해 국가반부패위원회(NACC)와 대법원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2006년 군부쿠데타 이후 친탁신세력 견제를 위해 이들 독립기관의 권한은 대폭 강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와 잉락 총리를 비롯한 탁신가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헌재는 지난 3월에도 반정부 시위대의 반대 속에 파행적으로 치러진 조기총선을 무효라고 결정해 잉락 총리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가했다. 이 때문에 태국 정부와 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7월 20일 재선거를 실시키로 했었다. 하지만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7월로 예정된 총선 역시 제대로 치러질지 불투명하게 됐다.
헌재는 2007년 5월에도 잉락 총리의 친오빠였던 탁신 전 총리가 집권하던 시절 여당인 타이락타이당(TRT)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해체 명령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NACC 역시 잉락 총리에 대해 쌀 수매 정책과 관련해 대규모 재정 손실을 초래했다며 업무방기 혐의로 조사를 하고 있다. 해임 결정이 아니더라도 여기서 혐의가 인정되면 잉락 총리는 상원의 탄핵투표에 직면할 상황이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