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선장 ‘졸음운전’도 바다 위 대형사고 주요인
입력 2014-05-08 02:10
‘졸음운전’이 해상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선사들이 무리하게 운항을 강행하면서 선장의 졸음항해가 선박 사고의 한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양안전심판원의 선박 사고 판결문들을 살펴보면 어처구니없는 졸음항해 사고가 숱하게 발견된다.
지난해 8월 23일 오전 3시50분쯤 인천 영흥도 부근 해상에서 조업하던 24t 어선 A호가 근처에 정박 중이던 8t 어선 B호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A호 선원 9명이 바다에 떨어졌으나 다행히 모두 구조됐다. 사고는 A호 선장이 항해 중 졸면서 발생했다. 해양안전심판원 재결서(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멸치 어군을 쫓아 이동하느라 엿새간 하루 3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홀로 조타실에서 항해 당직을 서다 잠이 드는 바람에 작업등을 켠 채 정박 중이던 B호를 보지 못해 사고를 냈다.
지난해 7월 8일 오전 4시30분쯤에는 경북 구룡포항 사라말등대로부터 0.9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29t 어선 C호가 암초에 부딪쳐 좌초됐다. 선장은 어획량이 기대에 못 미치자 7일간으로 예정했던 조업을 사흘 만에 중단하고 귀항하던 길이었다. 7일 오후 11시부터 구룡포항으로 뱃머리를 돌린 선장은 무려 22시간이나 잠을 자지 않고 항해를 계속했다. 조업으로 피로가 누적된 선원 대신 선장 혼자 자동조타 기능을 이용해 항해하다 30여분간 졸았던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지난해 5월 23일 오전 3시54분쯤에는 경북 후포항 동쪽 해상에서 2만7000t 화물선 D호와 15t 어선 E호가 충돌했다. 역시 졸음이 문제였다. 사고 나흘 전 후포항을 출발한 E호 선장은 하루 3시간 수면시간을 제외하고는 항해 당직과 조업 지휘·감독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선장은 졸음을 막으려고 TV 음량을 최대로 높인 채 항해했지만 졸다 깨기를 반복하다 다가오는 D호를 보지 못했다.
해양안전심판원이 2012년 발표한 ‘선원 피로의 실태 분석 및 해양사고와의 인과관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7년간 발생한 선박 충돌·좌초 사건 857건 중 55건이 졸음항해 등 선원의 누적된 피로 때문에 일어났다. 이에 선사들이 선원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박상익 해운정책본부장은 “선사 측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선원으로 많이 채용하고 있어 갑을관계는 더욱 심해지는 추세”라며 “졸음으로 인한 해양 사고를 막기 위해 선박 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