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그대 품안에’ ‘베토벤 바이러스’… ‘대박’ PD들이 영화 만들어도 기대 못미치는 이유

입력 2014-05-08 03:53


2003년 7월, MBC 드라마 ‘다모’는 첫 방송과 동시에 돌풍을 일으켰다. 드라마는 그간 방영된 정통 사극들과는 질감부터 달랐다. 영상미는 수려했으며 배우들 옷차림은 색달랐다. 드라마를 연출한 이재규 PD에게 관심이 집중된 건 불문가지다. 그는 ‘패션 70s’(2005) ‘베토벤 바이러스’(2008) 등 차기작에서도 명불허전의 연출력을 보여주며 200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 PD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이 PD가 영화를 연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의 제목은 ‘역린’. 이 작품은 이 PD의 명성에 톱스타 현빈의 복귀작이란 화제성까지 보태지며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한 요즘, ‘역린’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7일 이같이 말했다. “PD 출신 감독이 만든 첫 영화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배우들 연기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극적 호흡이 정교하지 못하다.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 PD가 아직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스타 PD의 감독 데뷔전은 연전연패=안방극장에서 이름을 날리던 드라마 PD 중엔 이 PD처럼 영화에 도전했다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사례가 허다하다.

최근 20년간의 사례만 놓고 볼 때 가장 먼저 언급될 수 있는 인물은 황인뢰 PD다. 그는 ‘영상미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숱한 드라마를 통해 자신만의 영상미학을 선보였다. 많은 후배 PD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영화감독으로 나서도 성공할 것이란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1997년 영화감독에 도전장을 던진 황 PD의 스크린 데뷔작 ‘꽃을 든 남자’는 실망스러웠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호텔’ 등을 연출한 이진석 PD, ‘아스팔트의 사나이’로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이장수 PD, 요즘 드라마 ‘밀회’로 호평 받는 안판석 PD 등도 비슷했다. 이들은 영화 연출에 도전했지만 충무로의 높은 벽만 실감하고 브라운관으로 복귀해야했다.

평단의 평가뿐만 아니라 흥행 성적도 안 좋았다. 관객몰이에 성공한 건 오종록 PD가 만든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뿐이다. 영화는 차태현과 손예진, 두 청춘스타를 앞세워 23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제작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PD 출신 감독을 쓰고 싶진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영화는 감독 권한이 막강하다. 촬영을 주도하면서 하나의 점(點)으로 제작진과 출연진을 이끌어야 한다”며 “하지만 PD들은 이런 역량이 영화감독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문법은 다르다?=전문가들은 PD의 스크린 도전이 실패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영상을 다루는 예술이지만 영화와 드라마는 확연히 구분되는 장르라는 것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드라마와 제작의 메커니즘부터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는 드라마보다 긴 호흡으로 장면 하나하나를 만들어나간다. 짧은 상영시간 내에 메시지를 던져야하는 만큼 내용도 도발적이어야 한다. 속전속결로 만들어내는 드라마와는 밀도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영화는 드라마처럼 너무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에피소드를 나열해선 안 된다”며 “하지만 PD 출신 감독들은 이런 지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드라마 PD들이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영화에 도전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영화의 ‘문법’을 익히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영화 연출에 나선다는 지적이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영화감독 중 상당수는 스태프로, 조감독으로 장기간 훈련을 한 뒤에 연출에 뛰어든다”며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고 바로 감독으로 나서니 성공 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