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성호] 성지순례와 대테러 안전
입력 2014-05-08 02:36
지난 2월 중순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한국인 성지 순례객 탑승 버스에 감행된 자살폭탄 테러는 한국 정부·기독교계·여행업계에 대해 공히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일상적 매너리즘에 빠져선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분명해진 까닭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나이 산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장소로 기독교인은 일생에 한번은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대체로 같은 교회 교인들이 신앙심을 고취하며 장기간에 걸쳐 준비하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성지순례를 강행한다.
이러다보니 위험요소를 과소평가하고 기도와 영력(靈力)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없지 않다. 정부가 2012년 2월부터 여행경보단계 4단계 중 세 번째로 높은 ‘여행제한’ 지역으로 지정해 ‘긴급한 용무가 아닌 한 귀국, 가급적 여행취소 또는 연기’하도록 권고해 왔으나 이런 권고가 무색하게 내국인 방문객 수(연평균 3만명)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행사들은 2000년대부터 일어난 성지순례 붐에 맞춰 ‘모세의 출애굽 여정’ 등의 패키지를 경쟁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성지순례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여행사도 10개가 넘는다. 하지만 여행상품 어디에도 테러 위험을 제대로 알리는 곳이 없으며, 설령 고객이 위험성을 묻더라도 ‘괜찮다’거나 ‘생각보다 안전하다’고 둘러대기 일쑤다.
성지순례와 더불어 중동,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 국가에 대한 기독교계의 적극적인 선교활동도 여행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선교단체들은 이슬람권 국가 선교단을 ‘최전방부대’로 칭하며 현지 법규·정서 등을 도외시한 채 공세적으로 활동해 2007년 이후 100여명이 당국에 체포되거나 추방된 바 있다. 심지어는 2007년 7월 샘물교회 아프간 단기 선교단원 피살, 2009년 6월 예멘 여성 선교사 피살 등 인명 피해까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부, 기독교계, 여행업계는 모두 국민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되돌아보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방문 지역의 정세를 면밀하게 주시하고 특정 지역의 사태가 악화될 경우 ‘특별여행경보’를 선제적으로 발령해 여행을 준비하는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또 여행사를 대상으로 여행상품 판매를 자제하거나 해당 위험을 정확하게 안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그간 상대국과의 외교관계 악화나 개인의 여행자유 침해 소지, 종교계 및 여행업계와의 마찰 회피 등만 고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독교계 또한 성지순례나 선교를 준비하는 교인들에게 현지 문화나 테러정세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테러위험 지역에 대해서는 방문을 자제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지에 장기 체류할 선교사를 파견하는 경우 테러예방 요령과 같은 신변안전 수칙을 자체적으로 심도 있게 교육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유사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테러피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면 기독교계 전체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여행업계는 분쟁지역을 통과하는 성지순례 여행상품 개발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리고 여행지에 정부가 여행 자제·제한지역으로 지정한 곳이 포함된 경우 반드시 고객에게 위험정보를 고지해야 한다. 이것은 여행사의 서비스가 아니라 관광진흥법(제14조)이 여행사에 부과한 의무이다. 여행 패키지 상품 안내서에 해당지역 안전정보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출발 전에 여행지가 위험한 곳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등 자신의 신변안전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성호(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