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 장흥에서는 글자랑 하지말라”… ‘문림의 고향’ 장흥으로 떠나는 문학기행

입력 2014-05-08 02:05


여행도 장소에 따라 제철이 있기 마련이다. 언제 찾아도 상관없는 곳이 있지만 때를 잘 맞추면 여행의 재미가 더해지는 곳도 많다. 여기에 여행의 주제까지 맞아떨어지면 금상첨화. 수백 년 동안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신록이 아침햇살에 형광색으로 물드는 5월에 ‘문림(文林)의 고향’ 전남 장흥의 바닷가로 떠나는 문학기행이 바로 그런 여행이다.

장흥군의 안양면과 용산면, 관산읍, 회진면, 대덕읍 일대 바닷가를 정남진(正南津)이라고 부른다.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경도상 정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정남진은 한국문학의 거장 이청준을 비롯해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 문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한국문학의 자궁’으로 불린다. 장흥군이 2008년에 국내 최초로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된 까닭이다.

문학하는 사람과 문학을 동경하는 사람, 그리고 문학의 세상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장흥 문학기행길에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천관산 기슭에 위치한 천관산문학관이다. ‘관서별곡’을 지어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장흥 출신 기봉 백광홍(1522∼1556)을 비롯해 한국 문학사에 획을 그은 작가들을 시공을 초월해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장흥 출신으로 문단에 등단한 작가는 100여명. 천관산문학관 관장으로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등 수많은 시집을 펴낸 이대흠 시인은 “질긴 땅과 뿌리 깊은 사람들이 장흥문학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장흥의 산줄기는 천재가 아니라면 그릴 수 없고, 강줄기는 바보의 마음이 아니라면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시인은 “처음부터 다 갖춘 산, 들, 바다에 사람이 살다보니 좋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장흥 문학기행은 작가 한승원의 집필실 ‘해산토굴(海山土窟)’이 위치한 안양면 율산마을에서 시작된다. 아담한 한옥인 해산토굴은 득량만의 여다지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연못이 소담스런 잔디마당에는 수국 등 온갖 화초가 꽃을 피우고 있고, 해산토굴 아래에는 문학학교 ‘달 긷는 집’이 여다지해변에서 떠오르는 달을 기다리고 있다.

해산토굴에서 종려나무 가로수길을 달려 여다지해변에 닿으면 한승원 시비 30여개가 세워진 한승원문학산책로가 반긴다. 소설 ‘키조개’에서 연꽃바다로 불린 여다지해변은 만물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갯벌이요 바다로 그려지고 있다. 해무 속에 희미한 득량도 쪽으로 바다가 한발 물러나면 여다지해변은 조개를 캐는 억척스런 아낙들로 한 폭의 질박한 풍경화를 그린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한승원은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고 했다. 회진면 신상리는 한승원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반농반어인 고향마을과 앞바다를 배경으로 ‘목선’, ‘앞산도 첩첩하고’,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불의 딸’ 등 수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한승원 생가에서 미로 같은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로 가다보면 작은 언덕이 나온다.

앞메 잔등으로 불리는 언덕은 소설 ‘폐촌’의 무대로 김구럭을 짊어진 사람들이 가파른 언덕을 넘을 때 숨을 헐떡이며 기침을 했다고 해서 ‘기침고개’로도 불린다. 기침고개를 내려서면 소설 ‘갈매기’ 등의 무대이자 한승원 바다문학의 현장인 넓바우 포구가 나타난다. 천관산과 고흥반도가 한눈에 보이는 넓바우 포구는 한승원이 젊은 시절에 주민들과 함께 목선을 타고 다니면서 김양식을 했던 곳으로 주민들이 세운 ‘해산 한승원 문학현장비’가 그 때의 기억을 반추하고 있다.

3㎞ 길이의 삼산방조제 북단에 위치한 관산읍 신동리는 차세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소설가 이승우가 태를 묻은 곳이다. 방조제 앞 바다에 위치한 작은 돌섬은 소설 ‘샘섬’의 무대로 마을사람들은 ‘가슴앓이섬’으로 부른다. 옛날에 마을의 젊은 연인들이 주민들의 눈을 피해 목선을 타고 가서 데이트를 즐겼다는 낭만의 섬이지만 이승우의 소설에서는 분별력을 잃은 한 젊은이의 욕망으로 인해 무고한 목숨들이 죽어야 했던 살육의 현장으로 그려진다.

용산면 남포마을은 1995년 소설가 이청준과 영화감독 임권택이 ‘축제’라는 제목으로 소설 창작과 영화 촬영을 동시작업으로 진행한 마을이다. 당시의 이장 집을 비롯한 마을 전체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으로 소박한 포구의 해안선과 고즈넉하게 펼쳐진 득량만의 바다, 그리고 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소등섬이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왔제….”(이청준 ‘눈길’ 중에서)

이청준의 생가는 회진면 진목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에서 책가방을 둘러메고 나온 초등학생이 처음 보는 나그네에게 넙죽 고개 숙여 인사하는 진목마을은 ‘나무 위에서 잠자기’ 등 숱한 소설의 무대로 등장한 탓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마을처럼 느껴진다. 진목마을에서 대덕삼거리까지는 단편 ‘눈길’에서 광주행 버스를 타기 위해 어린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눈 내린 새벽에 걷던 산길로 노모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던 주인공이 뒤늦게 그 사랑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장흥 곳곳은 이청준 소설의 무대이다. ‘선학동 나그네’의 주무대인 회진면 선학동은 학이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의 관음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봄에는 유채꽃이, 가을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선학동 중턱에서 보면 맥랑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보리밭 너머로 물 빠진 회진포구가 드넓게 펼쳐진다. 포구에는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하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 양철지붕이 시간이 흐르며 녹슬어가고 있다.

가세가 기울어 가족이 흩어지는 바람에 20년 가까이 고향을 찾지 못한 이청준은 1979년 진목마을 아래 갯나들에 정착했다. 그리고 2008년 7월 31일 타계한 이청준은 보리밭이 지평선을 그리는 갯나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다.

예로부터 전라도에는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고, 여수에서 돈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자랑 말라는 말이 있다. 이제 여기에 한 줄의 글을 추가해야겠다. 장흥에서는 글자랑 하지 말라고….

장흥=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