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인천시, 의료 민영화 선도하나

입력 2014-05-08 02:27


인천시가 지난달 28일 ㈜차헬스케어와 인천 서구 청라 신도시에 2018년까지 1300병상짜리 투자개방형 영리병원을 포함한 대규모 의료복합타운을 조성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은 것을 두고 의료계에 뒷말이 무성하다. 한마디로 인천시가 의료민영화와 영리병원을 제도화하는 데 앞장서기로 작정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도전하는 송영길 인천시장이 전시행정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차헬스케어는 국내 최대 ‘병원재벌’로 꼽히는 성광의료재단 차병원그룹의 자회사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투자유치본부 관계자는 “소요재원 조달은 전적으로 차헬스케어 쪽에서 맡기로 했다”며 “현재 미국계 대형 병원체인과 싱가포르의 유명 영리병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만약 이 사업이 계획대로 성사된다면 인천시로선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으로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4월에는 미국 하버드의대의 국제협력기관인 ‘파트너스 헬스케어 인터내셔널’(PHI) 및 서울대병원과, 10월에는 한진그룹(인하대병원) 등과 각각 인천 송도 신도시에 복합의료타운을 건설하기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사업은 현재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은 하버드의대와의 협력병원이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한진그룹의 복합의료타운은 산업단지로 지정돼 있는 부지를 상업단지로 용도를 바꾸지 못해 제자리걸음이라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인천시가 이번에 ㈜차헬스케어와 함께 새로 조성하겠다는 청라복합의료타운은 규모만 좀 더 클 뿐 앞선 ‘한진의료복합타운’이나 ‘하버드의대 협력병원’ 계획안과 내용 면에서 큰 차이가 없고, 유효기간이 7월 하순까지 3개월에 불과한 양해각서(MOU) 수준이다. 그 안에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시에 제출해야 본 계약 체결과 부지 매입도 이뤄진다. 말 그대로 선거용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제자유구역의 외국 영리병원은 김대중정부 말기인 2002년 12월 허용된 뒤 규제 완화의 길을 계속 걸어 왔다. 애초 외국인 전용 병원에서 2004년부터 내국인 환자도 진료할 수 있게 됐고, 2012년부턴 외국인 의사 비율도 10%로 대폭 낮춰졌다. 정부는 이제 이 제한 장치마저 ‘규제완화’란 명분으로 해제할 움직임이다. 명분은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함이란다. 인천시가 신도시에 영리병원을 세우려는 이유 역시 일자리 창출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의료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우리 국민이 치료를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갈 일이 없게 만들고 나아가 외국인 환자를 국내로 불러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

과연 그렇게 좋은 일만 생길까. 나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본다. 누가 운영하든 영리병원은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진료가 아니라 병원 이익에 부합되는 진료만 도모할 게 뻔한 까닭이다. 화호화구(畵虎畵狗)란 말이 있다. 호랑이를 잘못 그리면 개같이 그려진다는 뜻이다. 화려한 것도, 거창한 것도 좋지만 어쭙잖게 덤비면 용두사미로 끝나기 쉬우므로 주의하라는 경구로 쓰인다.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보듯이 안전장치 하나 없는 무장해제 상태에서 눈앞의 작은 이익만 좇는 행위는 위험하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의료민영화와 영리병원을 제도화하는 일은 반드시 국민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의 사업 추진은 곤란하다. 외화 몇 푼 더 벌려다 국민건강을 외국의 상업자본에 맡겨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글로벌 신도시의 의료 인프라 구축에도 차근차근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는 소걸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