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성CEO 열전] (17) 김태련 아이코리아 회장
입력 2014-05-08 02:15
“더 나은 세상 만드는 교육사업에 푹 빠져 나이도 잊었어요”
올해 희수(喜壽)를 맞은 김태련(77) 아이코리아 회장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보였다. 동그란 뿔테 안경에 정정한 자태, 침착하고도 신념에 찬 말투는 그의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국내 최초로 ‘발달장애’란 용어를 도입하고 ‘여성심리학’을 가르친 김 회장은 한국 발달심리학계의 거목이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며 40여년간 교육자로 살았다. 그런 그가 정년퇴임 직후인 2002년, 한국어린이육영회(아이코리아의 전신) 회장을 맡아 경영자로 변신했다. 장애아동·평생교육에 대한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그의 열정 때문이다. ‘시대와 사회에 맞는 교육을 제공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란 경영철학을 가진 김 회장을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충민로6길의 아이코리아 본사에서 만났다.
김태련 회장은 회장실보다 강단이 더 익숙한 천생 ‘교육자’다. 이화여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4년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의 전공은 발달장애심리학. 당시로선 생소한 학문이었다. 그는 이대에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아동센터를 세우며 연구에 천착해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됐다. 강단 밖 연구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해 한국자폐학회, 한국발달심리학회, 한국여성심리학회 등에서 회장을 역임했다. 교육자로서 한길만을 걸어온 그에게 기업 경영이 버겁진 않았을까. 그러나 김 회장은 아이코리아의 경영도 교육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제가 진로를 바꿨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학생을 가르치고 여성단체·학회 등의 모임의 장(長)을 맡은 것도 한 조직을 운영한 거라 보거든요. 또 제가 대학에서 발달심리학 이론을 연구했다면 여긴 적용하는 현장이에요. 그래서 전 기업 경영자지만 한편으론 계속 교육계에 몸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의 관심사는 기업의 운영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취임할 당시인 2002년 아이코리아는 보육교사 양성 및 재교육 등 비장애인 교육사업을 중점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자녀를 적게 낳고 각종 장애와 질병을 앓는 어린이가 늘자 김 회장은 2006년 아이코리아로 사명을 바꾸고 사업을 확장했다. 주로 한부모·다문화 가정의 자녀교육과 장애인·여성·노인교육 등 사회변화를 반영해 사회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베스트버디스코리아’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친구가 돼 주는 이 프로그램은 김 회장이 주도적으로 이끈 사업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학부모가 ‘자녀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소원’이란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그는 미국 태프트 대학에 장애인 독립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2008년 이 대학을 방문했다. 1년간 이 대학과 교류하며 국제 봉사단체인 ‘베스트버디스’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해당단체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협약 제안을 했다.
그의 제안은 현실이 됐다. 베스트버디스 관계자는 2010년 아이코리아가 운영하는 한국육영학교와 아동발달교육연구원을 돌아본 뒤 파트너십을 맺었다. 발달심리학을 전공한 회장이 이끄는 단체라는 점도 가점 요인이 됐다. 그해 아이코리아가 설립한 베스트버디스코리아는 현재 10개 학교 150명의 청소년이 참여하는 활동작품 전시회와 후원음악회를 매년 연다. 2011년과 2013년엔 본부로부터 우수 프로그램 진행상을 받기도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친구를 사귀면서 서로 다름과 아픔을 배웁니다. 의외로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상대에게 더 많은 걸 배워요. 장애인 사업이라 학부모들이 꺼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의 인생관이 바뀌었다며 둘째도 이 프로그램에 보내겠다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거든요.”
최근 그가 주력하는 사업은 ‘애도 심리학’ 프로그램이다. 장애인 부모의 심리를 상담하고 치유하자는 목적에서 개설됐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세월호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드러난 사건입니다. 서로를 탓하기보단 아픔을 나누는 게 더 시급합니다. 확정된 건 없지만 애도상담가를 현장 지원해 피해자 가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김 회장은 3대째 모태신앙이다. 그의 외조부는 강화도 내리교회 설립자인 윤명삼 장로이다. 신심이 각별한 가풍에서 태어난 그는 신앙을 ‘삶의 중심’이라 정의했다. 그는 회사 경영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신앙이 미친 영향이 크다고 했다.
“어려울 때마다 힘을 얻었던 순간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였던 것 같아요. 회사 등 여러 일에 의논하고 응답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하나님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을 가진 여성 기업인에게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고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하라 당부했다. “신앙은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변인에게 ‘네가 믿는 하나님이 믿고 싶다’는 사람이 먼저 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먼저 섬기고 나누는 리더십을 갖추십시오. 21세기 리더십의 핵심은 섬김과 봉사입니다. 군림하지 않는 유연함이 시대를 앞서가는 리더를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김태련 회장
△1937년 경북 안동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 학사 및 석사 △성균관대학원 심리학 박사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 △이화여대 발달장애치료교육센터장 △미국 UCLA대 파견교수 △한국어린이교육협회 한국자폐학회 한국발달심리학회 한국여성심리학회 등 학회장 역임 △아이코리아 회장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