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섭의 시시콜콜 여행 뒷談] 역사 왜곡하는 스토리텔링
입력 2014-05-08 02:10
경남 산청군 금서면의 왕산 기슭에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닮은 돌무덤 ‘전 구형왕릉’이 있습니다. 구형왕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10대 왕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국운이 기울자 신라 법흥왕에게 항복했다고 합니다. 훗날 임종을 앞둔 구형왕은 “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어찌 따뜻한 흙 속에 묻힐까. 차라리 돌로 덮어 달라”고 하자 군졸들이 시신을 매장하고 잡석을 하나씩 포개어 얹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는 ‘전 왕온의 묘’가 있습니다. 왕온은 고려의 왕족으로 삼별초 장군 배중손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후 진도에서 대몽항전을 하다 여몽연합군에 대패하고 홍다구에게 피살된 것으로 전해오는 인물입니다. 진도 지역의 구전에 의하면 왕온의 형이 흙을 뿌려 무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구형왕릉과 왕온의 묘에는 ‘전(傳)’이라는 글자가 수식어처럼 붙어있습니다. 고분 발굴 등을 통해 검증을 하거나 할 수는 없지만 전설이나 구전에 의해 구형왕과 왕온의 무덤으로 전해온다는 뜻이지요.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자를 빼면 어떻게 될까요?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는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경덕왕릉이라는 고분이 있습니다. 신라 왕릉처럼 거대한 이 고분은 경북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묘역은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새긴 비석과 문인석·장명등·상석으로 단장되어 있지요.
조문국의 실재 여부는 삼국사기에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 자세한 문헌자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문국의 왕릉을 찾아내고 더구나 왕의 이름까지 알게 되었을까요? 1971년 발간된 ‘영남의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의성 현령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나는 경덕왕이다. 아무 곳에 가서 살펴보고 무덤을 개수 봉안토록 하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튿날 현령은 무덤을 발견하여 수리하였고 그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의성군은 몇 해 전 그 고분에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습니다. 왕의 무덤이라는 역사적 증거도 없고, 왕의 이름도 전해지지 않는데 어떻게 이 고분이 조문국의 경덕왕릉인지 의아하기만 합니다. 더구나 구형왕릉이나 왕온의 묘처럼 ‘전’자를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 고분이 조문국 경덕왕릉으로 포장돼 역사적 사실처럼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광자원을 마케팅하려는 지자체의 그릇된 의욕이 역사왜곡을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례가 경덕왕릉 하나뿐이 아니어서 씁쓸합니다.
박강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