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추돌 사고 ‘예고된 人災’… 사고 14시간 전 신호연동장치 고장 알고도 조치 안했다

입력 2014-05-07 02:15


지난 2일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추돌 사고는 무관심과 부주의가 쌓이고 쌓여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14시간 전 신호연동장치의 오류를 발견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앞 열차 기관사는 상왕십리역 출발이 1분30초가량 늦어졌는데도 관제소에 보고하지 않았다. 객차와 역내 비상방송 역시 ‘비상대응 매뉴얼’과 달랐던 것으로 드러나 허술한 운행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호 오류’ 무시한 서울메트로=상왕십리역 승강장 진입 전 655m, 430m, 211m 지점에 열차를 위한 신호기가 순차적으로 설치돼 있다. 사고 당시 신호기 3개 중 2개에 데이터 오류가 발생했다. 후속 열차가 접하는 순서대로 ‘주의(655m)·정지(430m)·정지(211m)’로 표시돼야 했지만 당시엔 ‘진행·진행·정지’로 잘못 표시됐다. 신호기가 정지(빨간색)로 표시되면 열차자동정지장치(ATS)가 작동돼 제동이 걸린다. 그러나 두 번째 신호기에 ‘정지’ 대신 ‘진행’ 신호가 표시되면서 열차는 세 번째 신호기에 이르러서야 제동이 시작돼 사고가 발생했다.

오류는 충정로역∼상왕십리역 구간의 열차 제한속도를 시속 25㎞에서 45㎞로 높여 달라는 기관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달 29일 오전 1시10분쯤 신호연동장치의 데이터를 수정하면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6일 “10분간 진행된 수정작업 직후에는 오류가 없었지만 2시간여 후인 오전 3시10분쯤부터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 조사 결과 나흘 뒤인 지난 2일 오전 1시30분쯤 궤도신호사업소 신호팀 직원이 신호기계실에서 모니터상으로 신호 오류를 확인하고 산하 제2신호관리소 부관리소장에게 통보했지만 그는 이를 통상적인 오류로 보고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있으나마나 한 관제 시스템과 매뉴얼=허술한 관제 시스템도 사고를 키웠다. 상왕십리역에 정차해 있던 앞 열차 기관사 박모(48)씨는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열차 문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아 세 번이나 스크린 도어를 여닫는 바람에 출발이 1분30초가량 늦어졌지만 이를 관제소에 보고하지 않았다. 관제소의 대응도 부실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제소 측은 앞뒤 열차 간격이 좁아질 경우 통상적으로 앞 열차에만 회복 운행을 하도록 지시했다”며 “전산 시스템에 의해 자동 관리가 된다는 이유로 기관사가 이런 지시를 수신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전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메트로의 ‘비상대응 표준운영절차’ 중 추돌사고 매뉴얼을 보면 추돌 후 승무원은 바로 관제소에 신고해야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승무원의 신고는 승객이 119로 최초 신고한 시각보다도 4분 늦었다. 사고 발생 후 5분 안에 모든 열차와 역사에 이뤄져야 할 안내방송도 실제로는 사고 13분 후에야 역사에 나갔다. 사고 열차 내 대피방송 역시 장비 고장 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승객들은 암흑 속에서 스스로 열차를 빠져나와야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열차사고수사본부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메트로 본사 기계실 등 4곳을 압수수색해 신호 관련 과실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사고 당시 메트로 측이 안전 매뉴얼과 다르게 대응한 부분이 있는지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 특별안전점검 및 재발방지책 마련=서울시는 7월까지 지하철 전 노선에 대해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외부 전문가 등과 함께 특별안전점검을 벌이기로 했다. 변전소 전력공급 장치, 전차선 마모 및 높이, 열차 무선통신, 차량 제동 및 열차 보안장치, 열차 제어 시스템 등이 주요 점검 대상이다.

선행열차 출발 시 후속열차 주의운전 통보 등 열차 감시도 강화되고 역사 진입구간과 경사진 곳에 대한 안전속도 개선 등 매뉴얼도 정비키로 했다. 지하철 2호선에 대해서는 첫 열차 운행 전(오전 4시30분∼5시30분) 선로전환기, 신호기, 전기시설물 등의 이상 유무를 확인한 뒤 운행토록 했다.

서울시는 이번 사고 부상자들이 원하는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치료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기관에서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간병인 비용도 지원한다. 입원환자 중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입원기간 영업 손실을 보상키로 했다. 사고 직후엔 통증이 없었더라도 귀가 후 몸이 불편한 승객은 서울메트로(02-6110-5390)로 문의하면 지원받을 수 있다.

박세환 최정욱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