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부모가 더 신났다… 키덜트 “내가 좋아하는 상품 아이에게 선물”
입력 2014-05-07 03:35
주부 배정은(36)씨는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는 게 어렵지 않았다. 7살 딸이 원하는 선물은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로 레고였다.
배씨 딸은 레고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한 색칠공부로 사물을 배웠고, 레고를 조립하는 동영상을 보며 영어를 공부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배씨 가족이 딸의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신이 난 건 남편 박건우(41)씨였다. 박씨는 딸과 아내를 레고의 매력으로 인도한 주인공이다. 그는 레고 시리즈는 물론 운동화, 티셔츠 등 레고와 관련된 물건이라면 아낌없이 투자한다.
박씨는 6일 “어릴 적 레고 장난감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면서 “당시 레고는 고가라 살 수는 없었고 유치원에서 보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때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 레고를 구입하기 시작해 이제 딸과 아내까지 레고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4’라는 책에서 올해의 소비 키워드로 ‘키덜트(Kidult·어른 아이) 40대’를 제시한 바 있다. 키덜트는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강하게 간직하고 있는 어른이 나이 들어서도 어릴 적 경험을 되살릴 수 있는 것에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경향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이런 키덜트를 겨냥한 아이템이 부쩍 증가하면서 이 분야가 새로운 산업군(群)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레고와 같은 장난감 판매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전략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이미 생활용품·가전·패션 등 유통업계 전체에서 키덜트를 위한 캐릭터 상품 출시가 한창”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명품 브랜드 지방시는 키덜트 세대를 겨냥해 브랜드 특유의 디자인 전통을 깨고 애니메이션 그래피티 제품과 동물 모양을 넣은 가방 의류 등을 선보였다. 국내 여성 패션 브랜드 커밍스텝에서는 ‘도널드 덕’ 콜라보레이션 라인을 출시했으며, 금강제화의 잡화 브랜드 브루노말리는 디즈니와 협업해 봄여름용 ‘디즈니 에디션’을 새롭게 내놨다.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캐릭터를 반영한 어른용 가방과 지갑, ID카드지갑, 키링 장식 등으로 구성됐다. 주방업체 락앤락은 만화 캐릭터를 형상화한 ‘비스프리 컬렉션’ 물병을 만들었는데 일부 제품은 출시 한 달여 만에 품절됐다.
가전 분야도 키덜트 주부의 눈길을 끌기 위해 나섰다. 위니아만도의 ‘위니아 에어워셔 특별판’은 국내 캐릭터 회사 부즈클럽의 인기 캐릭터 ‘캐니멀’을 제품에 입혔다.
게임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학창시절 친구들과 즐겨했던 추억의 게임들이 다시 서비스되고 있다. CJ E&M 넷마블의 ‘학교2014: 반갑다 친구야’는 동창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회관계망게임(SNG)이다. 엠게임에서 카카오톡 플랫폼으로 내놓은 ‘프린세스 메이커’는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PC용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를 모바일로 재구성한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나경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사회는 어른들에게 성숙한 모습을 요구해왔지만 근래 들어서는 그들의 추억을 존중해 주고 있다”며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른들에 대해 인정해주면서 그들이 과감하게 지갑을 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