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3주일을 보내며… 다시 희망을 말할 수는 없을까

입력 2014-05-07 02:23

썩어가는 환부 방치

세월호가 침몰한 지 3주일이 지났다. 수습은커녕 여전히 실종자 수색이 이어지는 가운데 비통함과 분노와 무기력증이 유령처럼 음습하게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구약성서가 BC 6세기 유다 왕국의 멸망을 증언하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힘 있는 자든 힘 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만을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았다. 예언자와 제사장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괜찮다! 괜찮다!’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 그들이 그렇게 역겨운 일들을 하고도 부끄러워하기라도 하였느냐? 천만에!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렘 6:13∼15a)

대한민국은 숱한 재난과 사고에 직면할 때마다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부 발언과 ‘괜찮다, 괜찮다’하는 사회지도층의 면피성 장담이 이어지면서 썩어들어가는 환부를 방치해 왔다.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 간의 유착, 군림만 하려 드는 정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인식의 악폐를 끊지 못한다면 주저앉은 대한민국은 영영 회생할 수 없을지 모른다.

대한민국 위상 급전직하

기실 대한민국호가 위태롭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민주화를 쟁취한 나라,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압축성장을 이뤄 저개발국들의 발전 모델로 추앙받는 나라,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떠올라 자부심 넘쳤던 대한민국의 위상은 세월호 침몰 사태와 더불어 급전직하다.

의기양양 목소리를 높여 왔던 우리 사회는 겉만 그럴싸했고 허우대만 키워왔을 뿐 내실은 허술했다. 재난 앞에서 속속들이 드러난 우리의 민낯은 부끄러움과 참담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뻔히 눈앞에서, 그것도 백주 대낮에 대형 여객선이 가라앉는데도 인명 구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302명의 사망·실종자를 냈다.

아픔이 분노로 바뀌어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선원들은 승객들을 버리고 배가 침몰하기도 전에 탈출했다. “객실에서 그대로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을 했을 뿐 더 이상의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애꿎은 어린 학생들은 객실에서 밀려오는 죽음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구조를 책임진 해경은 우왕좌왕하며 시간만 허비해 인명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쳤고 “사고 해역은 유속이 빨라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사고 당시 자력으로 여객선 바깥쪽으로 접근한 승객들만 구조됐을 뿐 이후 더 이상의 생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컨트롤타워 부재 속에서 구조체계가 허둥대는 동안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해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장관 그리고 해경·해군의 최고책임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말했다. 정부의 다짐이 일찍이 이처럼 공허한 적이 없었다.

‘이게 뭔가, 대체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은 기진맥진 망연자실이었다. 아픔은 분노로 바뀌었고 모두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살아 돌아오라는 노란색 리본의 물결이 곳곳을 뒤덮었지만 우리는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삼류국가에서 기적은 기대난이라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두 번이나 다녀갔지만 정부 신뢰는 이미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인 그가 사태 수습을 총지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왜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았으며 관료들이 눈치만 살피는지가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대통령의 문제인지, 그를 보좌하는 최측근들의 잘못인지는 좀더 명백하게 따져봐야겠으나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크게 상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현장을 정확하게 통솔할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없으며, 촌각을 다투는 구조 대책은 그만큼 경직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허영·뻔뻔함 탓

세월호를 둘러싸고 있던 것은 온통 절망뿐이었다. 돈벌이에 급급했던 선사와 승객들의 안전 책임을 포기한 선원, 선박안전 및 안전운행 점검에 소홀했던 감독기관들, 유착과 비리, 탁상행정에 매몰된 채 위기상황에서 조율 능력을 상실한 정부…. 그런데 과연 그들만의 문제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당주의와 무사안일주의, 이기주의와 배금주의, 공동체와 유리된 끼리끼리문화 등 대한민국의 총체적 타락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통해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몽 같은 현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지금, 우리 사회가 다시 희망을 말할 수는 없을까. 민간 잠수사를 비롯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 애쓰다 죽음에 이른 이들의 살신성인이 있었기에 그나마 일말의 희망을 본다. 하지만 정녕 희망을 말하자면 우선 직간접적으로 사고에 관련된 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 그리고 그와 더불어 흔들림 없는 제도 및 기구 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정부·관료를 비롯한 사회지도층부터 장삼이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고 고백이다. 세월호의 침몰은 우리 사회의 과욕 때문이요, 그 희생은 우리들의 허영과 뻔뻔함과 악함 탓이었으니.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