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②] 사고 대처 능력 없어 ‘우왕좌왕’

입력 2014-05-07 02:23

“승객 여러분, 곧 출발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당시 1080호 기관사 안내방송)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1등항해사 안내방송)

“아, 연기 나고 엉망입니다. 빨리 조치해 주십시오!”(1080호 기관사와 종합사령실의 교신 내용)

“기울어서 금방 넘어갈 것 같습니다. 빨리 좀 와 주십시오!”(1등항해사와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의 교신 내용)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와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는 닮은꼴이었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1080호 기관사와 1등항해사, 종합사령실과 관제센터 모두 사고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이 없었던 탓에 실제 상황이 발생하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에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고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졌다.

기관사는 객차에 화재가 발생하자 승객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기관사 스스로의 대응 능력은 없이 종합사령실에만 의존하는 모습이었다. 사령실 역시 책임자가 없었고 입사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부사령이 업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했던 세월호 1등항해사도 승객들에게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만 하고 VTS에 해양경찰의 구조를 요청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해양경찰의 긴급 출동, 초기 구조 활동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세월호와 교신 당시 관제실 책임자가 자리를 비웠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승객들은 방송대로 기다렸지만 기관사는 객차 출입문을 폐쇄한 채 마스콘 키를 빼서 탈출했고, 선장과 선원들도 퇴선명령 없이 배에서 빠져나왔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11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대응 과정에서 똑같은 문제가 그대로 반복됐다. 지난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추돌 사고 역시 종합관제소와 기관사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안내방송 등 구호조치가 적정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승객들은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와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반복될 것을 우려해 스스로 탈출했다.

왜 이처럼 닮은꼴의 사고가 반복되는 것일까. 우선 우리나라 재난안전 대책이 예방 위주로 짜여 있어 사고 발생 시 현장의 대응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6일 “지금의 익숙한 훈련은 관례나 형식에 불과하고 본질에 적합하지 않다”며 “매뉴얼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다양한 상황을 상정해 도상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구조 경험이 많고 사고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전권을 갖고 사고 현장을 지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윤동근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구조 경험이 있는 현장 지휘관들의 권한이 부족하고, 중앙의 명령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라며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현장을 잘 알고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리더가 지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