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②] 대동소이한 재난 백서들 문제점 지적에 그치고 “끝”
입력 2014-05-07 02:04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재난 백서(白書)를 발간해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김진항 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은 6일 “재난 백서는 동일한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난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관련자들의 책임회피용이나 표창을 받기 위한 자료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292명이 사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나 지자체가 발간한 재난 백서는 모두 6권이다. 서해훼리호 사건에서부터 1994년 서울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9년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의 생명을 앗아간 경기도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등이 백서로 정리됐다.
이들 백서는 사고 발생 원인에서부터 대처 과정, 문제점과 개선사항들을 조목조목 분류해 기록해 놓았다. 백서 발간 이유는 분명하다. 사고가 난 지 1년 만에 발간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백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각오를 새롭게 하는 뜻에서 발간한다”고 밝혔다. 사고 발생 후 2년 후 발간된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백서도 “향후 재난 예방과 사고수습 과정의 지침서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명시했다.
백서들이 지적하는 문제점들은 같은 백서를 읽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동일하다. 백서들은 탈법적인 행태와 부주의한 관리가 사고를 불러왔고 사고대책 총괄 지휘체계의 부재, 부실한 초동대처, 부처 간 이기주의로 구조작업과 후속대처가 지연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재현됐다. 1∼2년간 많게는 700여쪽, 적게는 200여쪽에 달하는 백서를 만들어냈지만 결국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재난 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들 중에도 재난 백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신여대 김열수 교수는 “백서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백서가 지적한 문제점들을 법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형식적인 백서 발간은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