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②] 사고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정부와 국민… ‘페이퍼 신드롬’

입력 2014-05-07 02:04

② 사고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정부와 국민

정부는 지난해 9월 제6차 안전정책조정회의에서 과거 대형 재난 분석을 토대로 ‘후진국형 대형 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당시 회의에는 서해훼리호 침몰(1993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충남 태안 기름유출(2007년), 구미 불산누출(2012년) 등 11건의 대형 재난사고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보고됐다. 대형 사고 재발방지 대책에는 주기적 점검 규정 신설, 안전관리 실태 상시 확인, 근원적 사고 예방을 위한 국민 안전문화 확산, 효과적인 재난 대응을 위한 대응체계 개선 등이 포함됐다.

지난해 5월 말에도 정부는 제2차 안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내놨다. 컨트롤타워인 안전행정부를 중심으로 선제적·예방적·근원적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안전교육 생활화로 범국가적 안전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까지 총 12차례 재난·안전 정책을 총괄하는 안전정책조정회의가 열렸고 대형 사고 때마다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는 또 다시 ‘종합대책’ 카드를 꺼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자연재해, 해양사고, 건물붕괴, 화재 등 9개 분야 대형 사고 사례 분석을 통한 종합대책을 이달 내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책 발표는 그때뿐이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쏟아졌지만 정작 개선이 절실한 현장에서는 재난·안전 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1999년 유치원생 19명이 화재로 숨진 씨랜드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이 됐는데도 청소년 모험시설에 대한 안전규정이 없다. 지난해 충남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이후에도 모험시설은 안전점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 두 달 전인 지난 2월 20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와 관련해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부처별 안전 대책을 논의했지만 해양수산부 장관은 참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은 대형 사고 때마다 종합대책이 발표되는데도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로 페이퍼 신드롬에 빠진 관료주의의 한계를 꼽았다. 윤 소장은 6일 “안전 대책을 마련하면서 도식(모형)에 집착하게 되면 인적인 요소는 안 보이는데 메커니즘이 작동하리라는 착각에 빠진다”면서 “모든 대책에는 숙달 과정이 필요하고 디테일(세부사항)에서 완성도를 높여야 된다”고 강조했다.

대책 발표도 급조되다 보니 땜질식 처방이나 미봉책에 불과했다. 외국은 대형 사고가 나면 2∼3개월간 사고 조사와 면밀한 분석을 한 뒤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책부터 제시하다 보니 현장과 괴리된 설익은 정책들이 발표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중앙정부가 대책을 발표해도 이를 집행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안전관리 조직과 명칭이 제각각이어서 이를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