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감춰진 2000년전 ‘기독교 보화’
입력 2014-05-07 02:27
걸어서 가보는 로마교회 이야기/권순만·한인성 공저/한국장로교출판사
로마는 카타콤이라는 기독교 박해 유적지를 갖고 있는 동시에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될 정도로 찬란한 기독교 문화유산을 꽃피웠다. 이탈리아 로마장로교회 한인성 목사와 로마선교교회 권순만 목사는 잘 알려진 성지가 아닌, 로마에 감춰진 ‘보화 찾기’에 나섰다. 5년간 매주 만나 구상했고 탐방·연구했다. 이 책은 2000년 전 로마의 긴 세월 뒤에 감춰진 보화들을 소개한다.
대표적인 숨은 보화는 ‘바울의 셋집’과 ‘가내(家內)교회’다. 저자는 “그동안 바울의 셋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로마에 오래 산 분들, 안내책자, 인터넷 사이트 정보에도 바울의 셋집에 관한 정보는 없다”며 “처음 바울의 셋집을 찾아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고 고백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행 28:30). 저자에 따르면 바울은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가르쳤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를 이끈 작은 불씨가 바로 여기에서 지펴졌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의 셋집은 로마 초기 기독교의 근원지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당시 셋집은 감옥이 아니라 일반 가옥이었으며, 근래에 로마시대 일부 가옥이 발굴됨에 따라 당시 바울의 셋집을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에는 바울의 셋집이라 주장하는 곳이 두 곳 있는데, 트라스테베레 지역의 ‘산 파올로 알라 레골라 교회’와 비아 코르소 지역의 ‘산타 마리아 인 비아 라타 교회’이다.”(43쪽)
산 파올로 알라 레골라 교회가 있는 트라스테베레 지역은 1세기 당시 많은 곡물 창고와 천막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 로마의 주택 임대료가 비싼 것을 볼 때 당시 셋집 임대료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 이런 경제적 상황에 비춰볼 때 자비량 선교를 했던 바울은 주택 임대와 생활비를 위해 천막제조 일을 했을 것이다. 이는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 18:3)는 말씀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산타 마리아 인 비아 라타 교회는 5세기에 지어졌는데, 바울의 셋집은 교회 지하에 있으며 아직도 고고학적 발굴 요소로 남아있다. 1세기에 지어진 교회 지하에는 바울 투옥에 관련된 장면을 묘사한 7∼9세기 벽화 조각들이 남아 있다.
기독교 공인 이전 로마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비밀리에 예배드리는 장소로 일반 가옥을 사용했다. 나중에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되면서 이 가옥 자리 위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것을 가내교회라 불렀다. 베드로의 전도로 개종한 로마원로원 푸덴테 의원의 장녀 이름을 따 세운 ‘푸덴지아나 교회’, 둘째 딸 이름으로 4세기에 세워진 ‘프라세데 교회’, 3세기 가내교회 자리 위에 축조된 ‘빈콜라(쇠사슬) 교회’ 등이다.
책은 구역별로 이동하기 편하게 동선을 넣어 이들 보화로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바울의 순교지에 세워진 교회, 베드로 순교지, 제자들의 무덤과 예수님의 흔적, 성 베네딕토와 어거스틴 등 성인들의 교회도 소개한다. 책을 읽은 한 네티즌의 평이 마음을 울린다. “21세기에 부활한 로마교회를 새롭게 만났다.” 나태한 신앙에 새로운 활력과 도전을 심어주는 책이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