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 목사의 시편] 자녀,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입력 2014-05-07 02:26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간호사로부터 “딸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충격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한 아이의 아비가 되어 “이제 이 아이의 일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자녀 양육의 책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자녀양육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내가 아비가 되고 난 후에 어머니는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품이 3600개나 든다”고 말씀하셨다. 10년을 키워야 사람구실을 한다는 뜻이었다.

자녀양육의 중요성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다산은 미개하거나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옛 어른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 제 먹을 것 어깨에 걸머지고 온다”고 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농경시대의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성장기에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교육신학자 랜돌프 밀러(Randolph Miller)는 교육현장을 가정과 학교, 사회공동체, 교회 등으로 광범위하게 나누었다. 그 중에서 가정을, 사회의 기본적 창조질서로 기독교교육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현장으로 보았다. 가정에서 인생의 동기를 갖게 되고, 이상이 생기며, 습관이 형성된다. 그는 가정의 분위기를 통해 인격이 형성됨으로 가정이 가장 좋은 기독교교육의 장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의 부모들은 영유아기부터 제3자에게 자식 교육을 의탁하는 무지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노벨상의 25%를 수상하며, 미국의 대학교수는 유대인들이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비결은 머리가 좋거나 인구가 많거나 국토가 넓어서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부터 율법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유대인 가정교육은 ‘쉐마(Shema)교육’이다. 즉 아버지가 자녀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말씀에 교육의 비결이 있다.

자녀들은 부모의 역할과 행동, 인생관을 그대로 모방할 가능성이 많다.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자녀들도 좋아하게 마련이다. 부모가 남을 욕하는 것만 보고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적개심을 갖기 쉽다. 부모가 화를 내고 폭력적 행동을 보이면 아이가 그대로 배우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연구해보면 결국 부모에게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칸트(I. Kant)는 인간은 ‘교육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는 “교육에 의해서만 바른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건강한 사회, 번영하는 나라는 부모들의 훌륭한 자녀양육에 달려있다. 교육은 일종의 모방행위이므로 훈계보다는 부모의 좋은 생활습관이 중요하다. 자녀들은 무의식중에 부모의 행동양식을 배우기 때문이다. 부모의 무책임한 행동이 자녀의 앞날을 불행하게 하며, 사회불안 현상을 가져온다. 결국 우리는 자녀를 보면서 부모 된 이의 모습을 발견하며 ‘인생유전’이라는 말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여주 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