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강은교] 10원짜리 동전들

입력 2014-05-07 02:18


마트에서 카트에 넣기 위해 지갑 속에 손을 넣으니 동전이 잡힌다. 꺼낸다. 10원짜리다. 다시 집어넣는다. 또 10원짜리다. 지갑을 거꾸로 들고 흔든다. 동전들이 아우성치며 우르르 손바닥으로 떨어진다. 100원짜리 동전을 찾아 들면서 나는 순간 은빛 빛나는 100원짜리 동전들 사이에 부끄럽게 앉아있는 10원짜리 동전의 검은 낯빛에 움찔한다. 십원짜리 동전이 무척 처량해보였다. 카트를 밀고 마트에 잔뜩 들어찬 반짝거리는 상품들 속으로 빨려들면서 나는 내가, 아니 힘없는 우리 모두가 마치 십원짜리 동전인 듯한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실종된 나라는, 또는 우리라는 사람, 어쩌면 주민등록번호라든가 아파트 이름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우리’라는 사람들, 이상하게 찢어진 옷을 입고 나가도 아무도 쳐다보며 걱정하지 않을 우리라는 사람들.

시인 김수영은 일찍이 이런 시를 썼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라고.

60년대 이 시는 ‘독재’에 용감하게 맞서 투쟁하지 못하는 프티 인텔리겐치아인 자기를 스스로 비웃는 시였으리라. 그러나 지금 그런 투쟁의 시, 그런 소시민의 참여의 시를 쓰는 시인은 아무도 없다. 자기를 역사의 초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마치 9990원이 10원짜리 동전 한 개가 없어 만원이 못될 때에도 십원짜리 동전의 심각함을 따지는 사람이 없듯이 자기라는 존재의 심각성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십원짜리 동전은 언제부턴가 무(無)가 되었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찾지 않는 그런 무의 존재. 누가 길거리에서 얻어맞아도 아무도 눈길 주지 않고 지나가듯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물론 손길도 주지 않는 십원짜리 동전…. 그러나 10원짜리가 없으면 만원짜리도 있을 수 없다고 외쳐본다. 무의 힘은 사실 유의 힘보다 강하다고도 외쳐본다. 공허하다. 화폐의 단위는 이제 자동차의 등급처럼 일종의 카스트 제도가 되어 우리를 받쳐 들고 있다.

아마도 십원짜리 동전이 눈부셔지는 날 그럴 때 힘없는 이 나라의 모든 존재도 빛이 나리라. 이 거대한 역사 속에서, 신카스트 제도 속에서 빛나는 역사의 초석이 되리라. 위험을 무릅써 집어 드는 십원짜리 동전이 없다면 100만원도 1000만원도 1억원도 이루어질 수 없는 십원짜리 동전의 힘, 아, 무(無)와도 같은, 작은 것, 또는 사소한 것의, 힘!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