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①] 재난·안전 공인자격증 ‘全無’… 전문가가 없다

입력 2014-05-03 03:04 수정 2014-05-03 14:44


화물 과적, 무리한 개조, 무책임한 선장…. 세월호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침몰했다. 이후 사고 대응 과정 역시 부실투성이다. 침몰 전후를 지켜본 국민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하게 다가온 건 재난·안전 전문가의 빈자리였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으려면 하루빨리 재난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재난·안전 분야의 국가공인 자격증조차 없는 상황이다. 민간자격증만 우후죽순 난립하고 있어 이에 대한 체계적 관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현재 재난·안전 관련 민간자격증은 66개나 된다. 이 중 ‘안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55개고 나머지 11개는 재난예방관리사 재난극복관리사 등 ‘재난’ 관련 자격증이다. 2008년 4개에 불과했던 재난·안전 민간자격증은 박근혜정부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뒤 급증했다. 지난해에만 22개가 등록됐고 올 들어 벌써 18개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 가운데 공인된 자격증은 하나도 없다. 민간단체가 우후죽순 관련 자격증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 재난 현장에서의 효력이나 자격의 전문성, 활용도에 대한 검증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배천직 전국재해구호협회 차장은 “민간자격증은 법적 효력이 없어 한계가 있다”며 “안전의식을 고취하고 안전교육을 활성화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실제 재난 상황에서 구속력은 없다”고 말했다. 문종욱 한국화재소방학회 학술이사도 “실질적인 자격증은 그리 많지 않다”며 “기업에서도 민간자격증은 인정해주지 않아 선호도가 떨어지고 실제 사용되는 곳도 적다”고 설명했다.

응시자 수도 터무니없이 적거나 합격률이 너무 높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있다. 예를 들어 ‘재난안전지도사’ 자격증은 지난해 9명이 응시해 6명이 취득했다. ‘안전지도자’ 자격증 역시 2010년 28명이 응시해 모두 합격했고 2011년에도 응시한 19명이 전부 합격했다. 재난안전 민간자격증 실태를 종합적으로 집계하기는 불가능하다. 직업능력개발원 관계자는 “보유자 수나 현황 통계는 해당 업체에서 자율적으로 입력하게 돼 있는 거라 그 정보를 수집할 권한이 우리에게 없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자리를 잡아가는 재난·안전 관련 자격증은 보유자들을 지지해줄 기반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BCP협회는 2005년부터 59차례 재난관리사 교육 및 자격 검정을 실시해 1685명에게 재난관리사 자격증을 발급했다. 합격률은 70∼80% 선이다. 미국 재난관리사 자격증 교육 과정을 국내에 들여왔지만 그대로는 응시할 사람도, 자격을 유지할 만한 제도도 마땅치 않아 ‘한국식’으로 바꿔 2008년 민간자격증으로 등록했다.

정영환 한국BCP협회장은 “재난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부처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부처에 자격증을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기가 애매하다”며 “차라리 민간자격으로 국제 표준과 맞추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교육을 받고 이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 중에는 소방방재청 공무원 63명과 안전행정부 공무원 31명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자격을 갖춘 이 공무원들은 대부분 직급이 높지 않아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엔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부한 ‘기능적 전문가’는 많지만 재난 과정 전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선행업무와 후행업무를 두루 볼 수 있는 ‘통합적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