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추돌 사고] “갑자기 정전” 어둠 속 출구찾아 우왕좌왕
입력 2014-05-03 04:17
2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추돌한 두 열차의 승객 500여명은 사고 순간 지독한 공포를 체험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재현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승객들은 힘겹게 탈출했다. 추돌 직후 열차 안은 정전됐고 지하철 선로 내부 조명까지 모두 꺼졌다. 일부 객차에선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많은 승객이 어둠 속에서 탈출구를 찾느라 우왕좌왕했다. 일부는 급한 마음에 반대편 선로로 뛰어나갔다. 자칫 2차 사고가 벌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사고 열차에 타고 있다가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된 이영자(74·여)씨는 “잘 달리던 열차에서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나 열차가 폭발하는 줄 알았다”며 “출입문이 안 열려 열차 안에서 다른 칸으로 걸어가 열린 출입문을 찾았다. 불이 날까봐 승객들이 서로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이었다”고 설명했다. 간신히 승강장으로 대피한 이씨는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던 부상자들의 피를 보고 한번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에서 들이받은 2260열차 승객 장혜영(24·여)씨는 “대구 지하철 사고가 생각나면서 열차가 폭발하는 것 아닌가 싶어 손발이 떨렸다. 열차 밖으로 나가면 반대편 선로에서 달려오는 차에 치일까봐 고민하다 결국 다른 사람들을 따라 나갔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안내방송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더 큰 혼란이 빚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하철 2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측은 사고 직후 안내방송이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많은 승객들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2260열차의 네 번째 객차에 타고 있던 권유진(20·여)씨는 “남자들이 망치로 출입문을 열었는데 기둥 바로 앞이라 나갈 수 없어서 다시 닫았다”며 “대피 명령 등 안내방송은 못 들었고 승무원과 남자 어른들의 말에 따라 다른 칸으로 이동해 겨우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사고 열차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남성 승객은 “객차 손잡이를 잡고 서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쾅 소리가 나더니 정전이 됐다”면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연기가 막 나는 게 보였고 곳곳에서 ‘불난다’ ‘폭발한다’는 말이 들렸다”고 사고 순간을 전했다.
한꺼번에 많은 부상자가 몰린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는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메트로가 부상자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각 병원 접수대에서는 진료비를 놓고 피해 승객과 병원 직원 간 여러 차례 실랑이가 벌어졌다. 오후 8시50분쯤 응급차를 타고 뒤늦게 국립의료원에 실려온 남성은 응급실이 꽉 차 대기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자 “그러면 왜 나를 여기로 데리고 왔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응급차가 모자라 타지 못한 승객들은 직접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