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①] 인천 삼목항 긴급안전점검 동행… 하이힐 걸린다며 차량 고박장치 제거

입력 2014-05-03 02:15


① 여전한 안전불감증

지난달 29일 오전 10시30분, 인천 중구 영종도 삼목항에서 여객선 세종5호에 대한 안전점검이 실시됐다. 선사 측 직원 4명과 해경·항만청·한국선급·선박안전기술공단 직원 등 13명이 참여했다. 점검에 대비한 듯 갑판은 정돈돼 있었지만 점검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개그콘서트’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하이힐에 밀린 D링

“이게 뭡니까? 갑판 바닥에 D링(차량 고박을 위한 고리)이 없잖아요. 도면에는 있는데.” “젊은 아가씨들이 하이힐 신고 걷다가 걸려 넘어지는 일이 많아서….” “그럼 버팀목이라도 대야죠.”

점검이 시작된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지적사항이 나왔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인 고박 상태부터 불량했다. 상태가 심각하자 검사관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승합차를 직접 갑판에 주차하고 고박 상태를 살폈다. 곧 선원 한 사람이 버팀목 한 개를 들고 와 차량 우측 앞바퀴 뒤에 댔다. 해경 관계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바퀴 모두 다 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선원들은 부랴부랴 버팀목 세 개를 더 가져왔다.

지적은 이어졌다. “차량 한 대당 버팀목 몇 개를 대야 하나요”라는 해경의 질문에 한 선원이 “승용차는 두 개 정도…”라며 말을 흐렸다. “그게 어디 나와 있어요”라고 재차 따져 묻자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런 건 없는데…”라며 머뭇거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항만청 관계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끼어들었다. “이 배에 승용차 48대와 25t 트럭 한 대까지 싣도록 돼 있어요. 그럼 버팀목이 최소 98개는 있어야 하는데 95개밖에 없잖아요.”

선장은 머뭇머뭇

“선장님! 2지점에서 화재 발생입니다!” 화재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시작되자 곧 선장실에 긴급 무전이 들어왔다. 검사관들은 선장을 주시했지만, 그는 머뭇거리기만 할 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3초 만에 “상황 종료입니다”라는 무전이 들려왔다. 해경 관계자가 답답한 듯 “준비가 덜 됐네요. 다시 합시다”라고 말했다.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 비상벨이 울리자 선장은 마이크를 잡고 “탈출하십시오!”만 반복해 외쳤다. 해경 관계자가 끼어들었다. “선장님, 먼저 승객들을 한 장소에 모은 다음 대피시키셔야죠!”

이번엔 선장에게 퇴선 절차를 물었다. “지금 배가 30도 기울어 마음이 급해요. 그럼 어떻게 구조 요청을 해야 할까요. 선장님?” “뭐… 무전, 휴대폰, 신호탄….” 해경 관계자가 쏘아붙였다. “선장님, 가장 먼저 디스트레스(자동으로 인근 선박에 구조 요청을 보내는 장치) 버튼부터 누르셔야죠.”

선원들은 우왕좌왕

“소방장비 창고가 잠겨 있으면 불이 났을 때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항만청 관계자의 지적에 선원들은 그제야 잠겨 있던 2층 창고 문을 열고 주섬주섬 소방복과 헬멧, 산소통, 마스크를 챙겨 나왔다.

조타실에서는 무전기를 점검했다. 항해사가 가진 한 대뿐이었다. “무전기가 없으면 어떻게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립니까?” 해경이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비상벨이 울리고 훈련이 시작됐지만 선원들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항해사는 이들에게 목청껏 소리 높여 지시했다. “시∼작! 하면 소방호스 딱 열고 해야지!” “산소마스크는 나중에 쓰고 모자부터 써!” “야! 거기 장갑 떨어졌잖아!”

화재 진압 실패를 상정하고 승객을 대피시키는 내용이었지만 선원들은 아예 내용을 모르는 듯했다. 참다못한 해경 관계자가 방송으로 “불 끄는 데 실패했다고요! 퇴선 절차 진행하시라니까요!”라고 외쳤지만 선원들은 여전히 불 끄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결국 훈련은 또 다시 중단되고 전원 조타실로 불려와 다시 설명을 들어야 했다.

한국선급은 선사 편?

구명부기(상자 모양의 구명기구) 위치도 지적 대상이었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최상층 굴뚝 근처에 있었다. “왜 구명부기가 지붕에 있느냐”는 항만층 관계자의 지적에 선장은 우물쭈물할 뿐 대답을 못했다. 한국선급 직원이 끼어들었다. “높은 곳에 있으면 더 멀리 던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항만청 관계자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항만청 관계자가 “구명부기 주변 난간이 너무 높다. 저걸 어떻게 꺼내느냐”고 재차 묻자 한국선급 직원은 “난간이 너무 낮으면 바람에 날아가고, 그렇다고 묶어두면 또 뭐라고 할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항만청 관계자가 발끈했다. “왜 당신이 선장을 거들어요? 그럼 저 구명부기에 흰 끈이 무슨 용도인지 아세요?” 선급 직원은 당황한 듯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계단 밑에 있는 소화전을 두고 또 설전이 벌어졌다. 항만청 관계자가 “소화전이 계단 밑에 있으면 불을 끌 수가 없다”고 지적하자 한국선급 직원이 “그게 왜 저기에 있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항만청 관계자는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선박 검사한다는 선급 직원이 어떻게 그걸 몰라요?”

오전에 시작된 점검은 4시간 만인 오후 2시30분쯤 끝났다. 지적사항은 총 9개였다. 도면에 적힌 최대 차량 대수가 실제와 달라 ‘출항 전 시정조치’를 받았다.

이날 점검은 세월호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인천지검과 인천지방항만청 등 7개 기관이 지난달 23일부터 30일까지 인천 연안여객선을 대상으로 실시한 합동 점검의 일환이었다. 점검 결과 대상 선박 17척 모두에서 결함이 발견돼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인천=글·사진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