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원망, 하나씩 버리니 ‘친구’로 채워주시네요
입력 2014-05-03 02:39
아파서 함께 단짝이 된 이혜정 권사·조요나씨
두 여인이 있다. 그들은 베스트 프렌드, 단짝이다. 한 친구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몸이 불편하고, 다른 친구는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었다. 게다가 폐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 중이다. 모두 28번 받아야 한다. 전 한국해양연구원 조요나(36·모새골교회)씨와 이혜정(72·분당 가나안교회) 권사 이야기다. 이 권사는 조씨가 최근 출간한 ‘요나의 일기’에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은 반짝이는 눈을 한’ 예쁜 할머니로 등장한다.
봄볕이 따사롭던 지난 4월의 어느 날,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신관 옥상정원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 권사가 7번째 방사선 치료를 막 끝내고 나오던 참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조씨는 그러지 못했다. 척추뼈를 제외한 모든 관절에 염증이 생겨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권사가 다가와 반갑게 손을 잡았다. “난 괜찮아. 요나는?” 약간 높은 톤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 권사가 웃으며 말했다. 행복해 보였다. 36년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했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베프’가 된 두 사람. 아픈 몸으로 무슨 이야기를 그리 정답게 나눌까. 궁금했다.
잠시 멈춤, 그러자 내가 보였다
조씨는 비브리오의 생태를 연구했다. 짧게는 10시간, 길게는 수십 시간 연구원 실험실에 박혀 살았다. 화장실도 시간을 맞춰 갔을 정도로 바빴다. 어느 날인가부터 한쪽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따뜻한 물로 풀어주면 괜찮아지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자고 일어나자 온 몸이 뻣뻣했다. 병원에서 류머티스 관절염이라고 했다. 2004년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피곤한 듯했지만 괜찮았다. 그런데 한번씩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통증을 경험하고나면 두려웠다. 이상한 병 하나 때문에 일을 망칠까 무서웠다.
2005년 미국에 사는 언니한테 갔다가 수련회에 참석했다. 하나님께 울면서 매달렸다. “왜 내가 이렇게 아파야 합니까, 왜 나만 이래야 합니까, 억울합니다.” 하나님은 ‘물에 빠진 요나’에게 말을 거셨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요나야,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네가 아파서 나도 아프다.”
모태신앙인 조씨는 그제야 하나님을 만났다. 자신을 보고 아파하는 하나님 때문에 많이 울었다. 그리고 이 병은 하나님께서 주신 게 아님을, 힘들었던 하루하루의 삶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게 아님을 깨달았다.
2008년 1월 결혼했다. 아기를 가지려면 3개월 정도 약을 끊어야 한다고 해서 결혼 전부터 서서히 약을 줄여나갔다. 그런데 약을 끊으면서 몸이 심하게 나빠졌다. 결혼하고 6개월쯤 지나자 몸무게가 48㎏에서 38㎏으로 빠졌다. 무릎이 아파 못 걸었다. 아예 경기도 용인 친정집으로 옮겨왔다.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 남편은 1년 동안 주말이면 친정으로 아내를 만나러 왔다. 그 후 1년은 오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 하는 전화도 버거웠다. 결국 2010년 5월 이혼했다.
“남편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결혼하자마자 아내가 아팠으니까. 헤어질 때까지 저한테 상처 안 주려고 애 많이 썼어요. 좀더 일찍 이혼했더라면 덜 힘들었을지 모르는데…. 고마운 사람입니다.”
병 때문에 직장을 잃고 이혼도 했다. 두려워 피하고 싶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아픈 몸을 증오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늘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외할머니에게 원망하듯 물었다. 몸의 통증이 느껴지면 어떻게 하는지. 외할머니는 지병을 앓고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삶 속에서 고통을 느끼지 않으신단다. 그리고 통증도 거의 안 느끼시는데, 가끔 걷거나 숨이 가빠질 때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시지만, 그런 약간의 고통으로라도 세상의 많은 통증을 이해할 수 있음에 감사하신단다. 할머니의 병명은 만성폐쇄성폐질환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극심한 허리통증과 호흡곤란으로 힘들게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데, 우리 할머니는 세상에서 이름 붙여준 병을 지니고 계심에도 그 강인한 정신력으로 병이라는 이름을 초월하셨다. 결국 내 감정의 판단과 주체를 성령께 맡기시고 살아가시는 것이다.”(‘요나의 일기’ 중에서)
주변에서 권면했다. “요나야, 질병은 영혼의 외침이야. 활동을 멈추고 내면을 바라보라는 신호야.” ‘한가한 소리들 하고 있네’라며 무시했다. 더 화났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면을 들여다볼 수밖에. 그래서 시작한 게 일기를 쓰는 거였다. ‘요나의 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 병의 목적이 무엇일까를 계속 물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면아이를 만났고, 그 내면아이의 말을 들어주면서 제 내면아이가 사실은 바른 목소리, 성령님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조씨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시선, 그들의 인정, 돈, 예쁜 옷, 좋은 차, 좋은 학벌, 논문, 사소한 지식 등에 힘을 쏟으며 살았다. 그것을 잃을까 두려웠던 거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분은 ‘요나의 행복’을 바랐다. 몸에서 힘을 뺐더니 ‘행복한 요나’가 보였다.
수영장 라커룸에서의 첫 만남
“아파서 좋은 점들을 적어보자.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엄마, 아빠와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쓸데없는 모임에 나갈 필요가 없다. 사회에서 고립된 지 1년 반, 내가 원하는 인간관계만 유지된다.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 하나도 못 외우던 성경 구절도 꽤 외우게 되었고, 위급할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요나의 일기’ 중에서)
감사고백도 이어갔다. 보도블록 턱을 도움 없이 내려가고 올라갔던 일, 공원 작은 원을 도는 데 200보를 줄인 일, 넓은 원도 450보로 시작해 200보 후반으로 걸을 수 있었다. 샘솟는 생명력에 감사했다. 조씨는 2012년 5월부터 수영도 시작했다. 그리고 10월의 어느 날, 수영장 라커룸에서 사물함 번호를 찾지 못해 왔다갔다하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움직임은 불편했지만 할머니 손을 잡고 사물함으로 안내했다. “나는 앞이 잘 안보여요.” “저는 잘 걷지 못해요.” 둘은 한바탕 웃었다. 이 권사와의 만남은 불편한 상황도 초월했다. 그렇게 수영장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헤어질 땐 언제나 이 권사가 조씨를 끌어안았다. “요나야, 사랑해.”
둘은 만나면 신앙 이야기를 나눴다. 교회와 하나님, 삶의 의미, 내면의 생각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일기 이야기도 나왔다. 이 권사가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1주일에 세 번 정도 집으로 와서 같이 책도 읽고 간단한 심부름을 해달라는 거였다. 절뚝거리며 어디를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친구 때문에 용기를 내 운전을 시작했다. 둘이 맛난 음식도 먹으러 다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를 위해 조씨는 틈틈이 일기, 책을 녹음했다. 이 권사는 조씨에게 5만원 용돈도 건넸다. 조씨는 참 풍요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이 권사는 집안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부터 교회를 다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황반변성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다. 조씨를 만났을 무렵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당시의 심정을 그는 “죽음과 같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 권사는 단짝을 만나면서 희망을 찾았다.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시도 썼다.
“네 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나중에는 몸살이 나서 힘들었어. 내가 겪은 절망과 고통이 너의 고통에 투사되면서 한창 나이에 고통 받고 있는 너의 아픔에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어…. 일기 뒷부분에서는 너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부분으로 드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서 또 많은 감동을 받기도 했단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걸 다 성령님께 맡기기로 했어.”(‘요나의 일기’ 중에서)
지난해 겨울 이 권사는 폐렴으로 입원했다. 폐암 3기 진단도 받았다. 그때 친구에게 건넨 첫 마디는 ‘기대감’이었다. “내가 폐암에 걸리고 또 병을 고쳐가는 과정을 통해 경험하게 될 하나님을 기대한다. 요나야,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셔. 우리 몸의 아픔들도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믿어. 그 속에서 우린 숨은 축복들을 발견할 거야.”
친구 말은 맞았다. 번역에 윤문하는 능력, 그림에도 소질이 있다는 걸 아프고 나서 발견했다. 하나님이 조씨에게 준 숨은 재능이었다. 소망을 물었다. 이 권사는 “요즘 세상이 너무도 빨리 변한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 사고가 터지고. 이럴 때일수록 자기를 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한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리스도인들 말이야”라고 했다. 조씨는 “권사님은 사랑으로 한 평생을 살아오셨고, 지금도 사랑으로 살고 계신다”며 “하나씩 나를 버리니 사랑으로 채워지는 나를 발견한다”고 기대했다. 그렇게 단짝은 사랑으로 아픈 몸을 치유하고 있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