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안전 대한민국’의 침몰
입력 2014-05-03 02:48
화사한 봄날이다. 그러나 이 봄을 우리는 즐길 수 없다. 손도 못써 보고 눈앞에서 떠나보낸 300여명의 생명들 때문이다. 3주째 들어섰지만 세월호 참사의 비극은 진행형이다. 220여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70여명은 아직도 실종 상태다.
4월, 그리고 5월 대한민국은 세월호 블랙홀에 빠져들었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6·4지방선거나 브라질월드컵도 국민의 관심권에서 밀려나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봇물을 이루던 지역 축제와 마라톤대회, 이벤트성 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피해자 가족들뿐이 아니다. 집단 우울증과 자책감에서 빠진 사람들이 허다하다. 전국 곳곳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은 길거리에도, 인터넷에서도 번져가고 있다. 온 나라가 슬픔과 비통에 잠겨 있다. 국상(國喪)이 따로 없다.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단원고 학생들, 승무원들이 이미 탈출한 배 안에서 보내온 문자 메시지와 동영상, 뱃머리 일부만 수면 위로 드러낸 세월호, 그마저도 삼켜버린 무심한 바다,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들….
너무 마음이 아파 TV를 보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가장 충격적인 건 선박직 선원들의 행태다. 배가 기울자 자기 살기에 급급했다.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선원의 제1 책무는 그들에게는 딴 나라 얘기였다.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선내방송으로 승객들을 30분 이상 묶어둔 뒤 구조정이 오자 자신들만 탈출했다. 세월호가 완전 물에 잠기기까지 1시간 이상 시간이 있었는데도 탈출 명령을 내리지 않은 건 직무유기를 넘어 명백한 살인행위다.
사고 수습도 엉망이었다. 해경과 군·소방 등 구조 당국은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했다. 함정과 헬기 등이 대거 출동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고 실제 구조 활동에 투입된 건 아주 일부였다. 배가 가라앉기 전 탈출한 77명 외에 추가로 구조된 인원은 한 명도 없다. 선박회사의 각종 불법, 감독기관의 관리감독 부실, 해운업계와 공무원 간의 유착 등 추악한 부패의 카르텔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박근혜정부가 주요 국정 목표로 내건 ‘안전한 사회 구현’이 허상이었음을 상징한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만드는 등 뭔가 크게 바뀐 것처럼 떠벌렸지만 다 헛구호였다. 대통령이 뒤늦게 과거의 적폐를 바로잡고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세우는 ‘국가개조’ 수준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설익은 대책을 무더기로 쏟아내고는 시간이 흐르면 유야무야되는 전철을 되밟을 것이란 우려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
하지만 또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뼈를 깎는 각오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보고서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재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대책 말이다. 이번 사고와 수습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복기(復棋)하고 정밀 해부해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안전 분야에 대한 예산을 대폭 확충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러나 이보다 우선할 게 있다. 이번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찾아내 엄중하게 처벌하는 일이다. 달아난 선원들만이 아니다. 해당 선박회사와 해운조합 등 해운업계, 한국선급 등 선박 관련 안전기관, 해경과 해양수산부 등 감독 기관에 대해서도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지만 오랜 유착과 그에 기댄 부패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그 첫걸음이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