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대명동

입력 2014-05-03 02:44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왔던 명나라가 망하자 선비들은 넋이 빠져나간 듯했다. 명나라의 제16대이자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이 죽은 뒤 반청(反淸)의 뜻을 지키기 위해 아예 자신의 호를 숭정거사(崇禎居士)로 바꾼 선비도 있었다. 명이 망할 때의 연호(年號)가 바로 숭정 아니던가.

스스로 명나라의 신하를 자처한 행태는 지나치다. 그러나 이 숭정거사의 부인 인동 장씨의 지혜는 놀랍다. 남편이 실의에 빠져 세상에 뜻을 잃자 짬짬이 모아 둔 돈으로 공자가 난 곳과 같은 땅이라는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불린 안동 부근에 땅을 샀다. 그런 다음 “대명동이란 동네가 있으니 숭정거사가 거처할 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이곳으로 옮긴 뒤 서당을 열어 후학을 가르쳤다. 이문열 장편소설 ‘선택’에 나오는 얘기다.

대명동(大明洞)이란 이름의 유래가 정말 명나라를 숭배하거나 존중해서 지었을 것이란 증거는 사실 없다. 다만 일설에 의하면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파견된 두사충(杜思忠)이 이곳에 살면서 고국을 생각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전북 군산시 대명동은 명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다.

대구 대명동은 서울의 북한산격인 앞산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다. 앞산 정상은 멀리 경산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궁도장 등 다양한 시설도 갖춰져 있으며 산 앞에는 대구의 명물 따로국밥집도 즐비하다.

요즘 이 대명동이 또 한번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세모그룹 유병언 전 회장의 장남 대균씨 명의로 돼 있는 집이 바로 대명동에 있어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 집은 유씨 일가의 서류상 회사인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사무실로 알려져 있다. 근처에는 유씨 일가가 많은 지분을 소유한 방문판매업체 등과 인접해 있다.

흔히 뱁새로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동작이 재빠르고 움직일 때 긴 꽁지를 좌우로 쓸듯이 흔드는 버릇이 있다. 앞산에는 뱁새가 많아 하루 종일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댄다. 대구에서 주로 생활한 유씨가 아마 이 새를 보고 회사 이름을 지은 것 아닐까 싶다. 새 이름처럼 시끄럽지나 말았으면 좋으련만.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