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끊이지 않는 잡음·논란·의혹] 무능이 부른 불신… 현장엔 온갖 ‘說’만 난무

입력 2014-05-02 03:23 수정 2014-05-02 14:58


302명(잠정 집계)이 수몰됐고 1일까지 220여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 아이의 시신 앞에서 부모가 절규하고 아직 찾지 못한 자녀를 기다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곳.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세월호 사고 현장은 이런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조와 수색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판에 의혹과 설(說)이 난무하고 혼선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킬 능력이 없는 ‘무능의 민낯’을 드러낸 정부는 사태를 수습할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채 의혹을 해명하는 데만 급급하다. 정부의 무능이 총체적 ‘신뢰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붕괴된 신뢰, 민간 잠수사 논란=당국의 초기 대응은 한심할 정도다. 단원고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고 했다가 실종자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번복했다. 공식 브리핑 뒤 불과 3시간여 만에 실종자 수를 107명에서 293명으로 번복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분통을 터뜨린 건 당연했다.

신뢰의 붕괴는 의혹을 양산했다. 정부가 유능한 민간 잠수사들을 구조작업에서 배제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의혹으로 시작됐다. 200여명 자원봉사 잠수사들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구조 당국이 특정 업체 잠수사들만 현장 진입을 허용, 이에 반발해 철수했다는 것이다. 이는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이하 언딘) 특혜 논란과 다이빙 벨 논란으로 이어졌다. 언딘 논란은 청해진해운과 언딘이 구난 계약을 맺은 관계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더욱 확산됐다.

언딘의 ‘실적 가로채기’ 의혹도 제기됐다. 최초로 선내에서 수습된 시신 3구를 자원봉사 잠수사들이 발견했지만 언딘의 실적으로 발표됐다는 것이다. 때 이른 논공행상에 실종자 가족들은 분개했다. 결국 자원봉사 잠수사들이 발견하고 이를 언딘 잠수사들이 끌어올린 것으로 정리됐으나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다이빙 벨 논란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가 장시간 잠수작업이 가능한 다이빙 벨을 투입하겠다며 현장에 도착했다가 구조 당국의 거부로 물러났다. 지지부진한 구조작업에 분개한 실종자 가족들이 다이빙 벨 투입을 요구하자 다시 투입키로 결정됐다. 당초 해군 해난구조 전문가 등은 “이 대표의 다이빙 벨보다 첨단화된 캡슐형 장비(PTC)도 있지만 세월호 현장에는 부적절해 투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무능한 당국보다 민간 전문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1일 사고 현장에 투입된 다이빙 벨은 불과 45분 작업 후 철수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이 대표가 실종자 가족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분개했다.

◇못 믿을 해경, 모든 논란의 중심에=재난 구조 책임 기관인 해경은 지금 소극적인 초기 구조 의혹부터 늑장 대처, 특정 업체 일감 몰아주기 등 거의 모든 의혹의 중심에 있다. 책임 기관이 각종 추문에 휘말리면서 구조작업은 컨트롤타워를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해역에서 해경과 해군이 구조작업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은 초반부터 이어졌다. 의혹 수준에 불과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작업일지가 공개되면서 근거를 갖게 됐다. 해경이 언딘 잠수사들을 투입시키기 위해 해군의 해난구조대(SSU), 특수전전단(UDT/SEAL) 등 최정예 잠수요원의 현장 진입을 막았다는 내용이다. 해경과 해군은 진 의원에게 제출된 작업일지에 오류가 있었다며 진화를 시도했지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해경이 사고 당시 해군 헬기의 진입을 막은 일도 드러났다. 구조헬기 한 대가 아쉬운 상태에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해경은 “해경 헬기가 활동 중이어서 충돌 위험이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주도권 다툼의 일환이었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해경-언딘-청해진해운 유착 의혹까지 불거졌다. 언딘의 대표가 해경의 법정단체인 한국해양구조협회 부총재직을 맡고 있으며 해양구조협회 부총재단에 해경 경비안전국장 등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해경이 언딘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다.

해경 고위 간부가 과거 청해진해운에서 근무한 경력이 드러나면서 해경-언딘-청해진해운의 3각 커넥션에 대한 의혹이 증폭됐다. 해경의 수사와 정보 파트를 총괄하는 이용욱 정보수사국장이 청해진해운의 전신인 세모그룹에 몸담았었다는 내용이다. 이 국장이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해경에 특채되는 과정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도움을 줬다는 설까지 나왔다. 실제로 이 국장은 자신의 박사 논문에서 유 회장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대통령부터 전남지사까지…피해자 가슴에 또다시 ‘대못’=사고 후 끊이지 않았던 고위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도 신뢰를 무너뜨린 요소였다. 안전행정부 송영철 국장은 지난 20일 진도 팽목항 임시상황본부의 세월호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실종자 가족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송 국장은 결국 직위해제됐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세월호 사고 당시 인명 구조를 위해 출발하던 광주시 소방헬기의 기수를 돌려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직접 만나 한 것이 아니라 방송 카메라를 통해 사과한 탓이다. 여기에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유족들이 사과를 받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해 기름을 부었다.

앞서 박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경기도 안산의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세월호 희생자를 조문했다. 조문 중 한 할머니와 포옹하며 위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러나 이 할머니가 유가족이냐 일반 조문객이냐를 둘러싸고 ‘연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왜 이렇게 허둥대나…전문가들 “위기 대처 경험 부족”=사고 초반 실종자 가족들의 주변 환경은 ‘시장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총리실,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경, 해군, 민간잠수부, 언론이 몰려들었다. 공직자들은 “제 소관이 아니다”라거나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전문성이나 책임감도 없으면서 윗분들이 나와 있으니 머릿수만 채우고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현장은 잡음으로 가득했고 어느 누구도 책임 있는 얘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공허하게 되풀이하는 고위공직자들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모습도 나타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이들에게 현혹됐고 정부도 휘둘렸다. 다이빙 벨 논란이 대표적이다. 최정예가 군사작전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부족한데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힘이 실리며 혼선을 빚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전영한 교수는 “대통령이 현장을 찾았을 때 한 명의 전문가에게 책임을 지우고 현장 지휘를 맡겼어야 했다”며 “재난구조 체계가 초반에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렇게 잡음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반부터 기구별 정책 조정이 원활치 않았고 매뉴얼도 작동하지 않은 ‘사태 수습의 참사’”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근식 교수는 “사고 전에 민·관·군 합동 재난구조 체계를 만들었어야 했다”며 “민간과 협조하는 시나리오가 준비되지 않아 민간단체에 대한 잡음이 유독 많았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 교수는 “준비해 둔 시스템이 위기상황에 적용됐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 숙지하지 않았다”며 “조직 개편 등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혼선을 최소화하는 관리자들의 소프트웨어 부재였다”고 말했다.

진도=이도경 기자, 김유나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