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친람식 리더십 한계 ‘국가개조’ 땜질 그칠 수도
입력 2014-05-02 02:31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관료사회의 적폐를 척결하겠다며 국가개조론을 들고 나왔지만 자칫 땜질식 처방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국가의 실질적 컨트롤타워인 청와대부터 먼저 책임감을 가지고 변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공직사회의 병폐를 조목조목 지목했다. 공무원 임용 방식, 보직관리, 업무평가 및 보상 등 전반에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와 청와대에 대한 반성은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다. 박 대통령은 “집권 초 잘못된 관행들을 정상화하는 노력을 더 강화했어야 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지만 정부 내에 수동적이고 무책임한 행태가 만연하게 된 책임에서는 한 발짝 비켜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1일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은 ‘책임을 묻겠다’가 아니라 ‘내 책임이다’, ‘바꾸겠다’가 아니라 ‘나부터 바뀌겠다’고 약속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취임 이후부터 줄곧 만기친람(萬機親覽)형으로 불렸다. 박 대통령이 실무적인 부분까지 워낙 꼼꼼하게 지시를 내리고 챙기면서 붙여진 평가다. 가뜩이나 제왕적이라고 비판받는 우리 대통령제에 박 대통령의 ‘1인 리더십’까지 더해지면서 공직사회에 역(逆)시너지 효과가 퍼져나갔다.
박 대통령이 지난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던 순간에도 장관들은 눈을 내리깔고 받아쓰기에 급급했다. 지난 21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애도와 위로를 표할 때 청와대 실장·수석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각료와 청와대 비서진조차 대통령의 ‘말씀’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관료들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행정을 능동적으로 펴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각론에서 개혁을 단행해봤자 공무원들의 마음가짐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장 6·4지방선거 전후로 예상되는 개각에서부터 현장 대응 능력에 한계를 노출한 관료 중심의 내각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친다. 게다가 관료 출신으로 채워진 정부에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맡기는 ‘셀프 개혁’도 비정상이라는 지적이다.
이참에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약속한 책임 총리·장관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이제는 대통령이 정부를 이끄는 구조에서 벗어나 시스템에 의해 국정 운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히 재난처럼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개방형 공무원제도를 통해 전문가들을 장관 주변에 포진시키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들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주요 부처 장관은 정무감각이 있으면서 추진력 있는 인사를 택해 책임까지 지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