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자식 농사

입력 2014-05-02 02:30

사랑스런 자녀가 잘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개중에는 자녀를 학대하고 살해해 물의를 빚은 부모도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신보다 자녀의 성공을 더 바란다. 나아가 부모는 자녀를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가정에 자녀 대여섯씩은 둔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널리 퍼졌다. 맏이부터 막내까지 모두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 관한 한 예외를 둘 수밖에 없는 딱한 때도 있다. 가정 형편상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모든 자녀를 상급 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은 언감생심일 경우가 그랬다.

그런 가정에서는 대부분 장남을 교육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장남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부모 대신, 또는 부모를 도와 동생들을 보살폈다. 총명한 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하는 장남도 흔했다. 대개 장녀는 동생을 돌보고 가사를 도왔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다. 장남이 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은 1.19명으로 2012년보다 0.11명 줄었다.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요즘에는 주변에서 이런 세태를 찾아볼 수 없다. 가정마다 자녀 한두 명만 낳고 ‘귀한 자녀’에게 모든 걸 쏟아붓는다. 분유, 옷·신발, 유모차, 장난감, 교육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최고급을 선호한다.

모두 자식 농사에서 풍작을 기원한다. 자녀를 외국어고나 과학고에 보내면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것처럼 좋아한다. ‘인 서울(서울 지역의 대학 진학)’만 해도 괜찮고 SKY대(서울대 고대 연대)에 보내면 괜스레 얼굴 근육이 좍 펴진다.

자식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이들도 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막내아들이 페이스북에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하다”는 글을 올린 데 대해 사죄했다.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는 일가의 축재 의혹과 관련해 자식 농사를 망쳤다고 후회했다.

최근 자식 농사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에섹스대 사회경제연구소가 1503가족을 상대로 형제자매의 서열과 교육적 성취도를 조사한 결과 첫째가 동생들보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7% 높았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맏이가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확률은 동생들보다 16% 컸다. 자식 농사에서 맏이가 중요한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