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은 왜 눈물로 단련되는가’ 체험적 보고서

입력 2014-05-02 02:21


“나는 30여 년의 세월을 눈물로 애도했다. 그러나 아무리 속 아픈 눈물이라도 그 끝은 있는 것이다. 눈물의 끝에서 웃는 울음이 생겨났다.”(‘웃는 울음’에서)

‘웃는 울음’이라는 이율배반적 조어(造語)를 탄생시킨 이는 천양희(72·사진) 시인이다. 체내에 남아 있는 마지막 눈물마저 증발해 버리고 나면 얻어지는 게 ‘웃는 울음’일진데, 그에게 1974년은 모두를 잃은 해였다. 그해 부모님이 세상을 떴다. 남편과 아이는 그의 곁을 떠나갔다. 흔히 ‘눈물로 지새운 나날’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낸 후 혼자 40년을 살다보면 눈물도 사치라는 생각이 왜 들지 않겠는가.

천양희 산문집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중앙북스)는 생은 왜 눈물로 단련되는가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이다. 그가 처음으로 직소폭포를 찾은 것은 1979년 7월.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 때였고 혼자 산 지 5년이 흐른 뒤였다. 그는 이왕이면 선비의 정신처럼 곧은 직소에서 직언하는 충신처럼 생을 끝내고 싶었다고 한다. 직소폭포는 울기 좋은 곳이었다. 폭포를 바라보는 동안 그 역시 폭포처럼 울고 있었다. 몇 시간을 바위 위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였다.

“‘너는 죽을 만큼 살아보았느냐’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아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고 들리는 것은 폭포소리뿐이었다. 그 소리는 내게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소리였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고 나만의 신비한 체험이었다.”(‘폭포소리가 나를 깨운다’에서)

천양희의 산문은 오랜 시간 속에서 다듬어진 연륜의 언어이자 체험의 언어인 동시에 말로 다할 수도, 눈물로 대신할 수도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병원 근처에 사는 몇 년 동안 하루에도 몇 번이나 구급차가 ‘구아 구아’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 소리가 마치 죽어가는 사람이 ‘나를 구해줘요!’ 애원하는 구아(救我) 구아(救我)로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진맥진한 내 삶을 실어 갈 구급차는 없을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구급차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구급차를 기다리며’에서)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