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더 많은 비용 감수할 준비 됐나요
입력 2014-05-02 02:46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기자를 포함한 대다수 학부모는 현실적인 고민에 부닥쳤다. 아이의 수학여행을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라고 했는데, 수학여행이 생사의 문제가 됐다. 곰곰이 따져 보니, 수학여행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동수단부터 고민스러웠다. 학생들은 학교와 계약한 여행사가 마련한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지난 2000년 수학여행을 떠난 부일외국어고 수학여행단 사고가 있었다. 버스들이 빗길에 멈춰 선 트럭과 연쇄 추돌해 학생 13명 등 모두 18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다. 빗길 과속과 안전거리 미확보 등이 원인으로 드러났다.
아이가 탄 수학여행 버스가 안전하려면, 많은 조건들이 충족돼야 했다. 버스는 안전검사를 받았어야 하고, 검사기관과 버스회사의 부적절한 유착도 없어야 한다. 운전기사는 격무에 시달리지 않았어야 하며, 전날 과음도 곤란하다. 촉박한 일정에 운행 속도를 높이지 말아야 하며, 도로 상황도 안전하게 관리돼야 한다. 학부모나 학교가 버스 안전을 확신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가 묵을 숙소도 문제였다. 우리는 두 달 전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건을 목격했다. 2월 17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갑자기 붕괴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등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부상당했다. 수사 결과 체육관에는 부실자재가 사용됐고, 공사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숙소와 행사장이 안전하려면, 건물은 설계대로 시공됐어야 하고, 불량자재가 사용되지 않았어야 하며, 정부나 관련 감독기관은 이를 철저히 확인했어야 한다. 숙박업주 역시 늘 안전점검을 실시했어야 한다. 생각할수록 수학여행은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 듯하다. 교육부는 지난달 21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국 초·중·고의 1학기 수학여행을 금지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런 식의 결론이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신뢰의 영역이다. 당연히 그러할 것으로 믿어졌던 것들이다. 사람들이 국가를 이루고 사회적 시스템을 발전시키면서 구축하고 합의했던 사안들이다. 세월호 참사는 그 믿음을 붕괴시켰다. 학부모들은 이 모든 위험에서 내 아이를 직접 지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다.
세월호를 계기로 안전에 대한 사회구조와 인식을 바꾸자는 말들이 많지만, 안전대책은 돈이 많이 든다. 많은 공무원과 관리요원들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고, 그들에게 줄 천문학적 세금도 필요하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최비용은 60억 달러였다. 이 중 안전 시스템 구축과 유지·관리비용에 10억 달러 정도가 투입된 것으로 추산됐다고 한다. 학부모가 부담하는 수학여행비가 50만원이라면, 추가로 10만원을 안전비용으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캐나다가 이 정도면 우리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안전 점검을 위해 비행기 출발이 늦어지거나 지하철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도 참아야 한다. 공무원들이 안전훈련을 위해 사무실을 비워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면 책임자 처벌도 필요하고, 정부 대책도 필요하다. 그런데 정말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 구성원이 더 많은 비용과 불편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비용과 불편함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어려운 일이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