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보고 듣고 연결하라

입력 2014-05-02 02:45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한참을 우는 친구 곁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늘 함께 재잘대던 단짝 친구였는데 말이다. 어깨를 토닥이는 손에 어느새 긴장이 배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뭐라고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때는 그동안 갈고닦았다고 자부하던 지식도, 배움의 끈이 길었는지 여부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평상시 매끄러운 말솜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당당하던 자세에도 당혹스러움이 배어난다. 누군가의 슬픔이나 고통 앞에 내가 이렇게 무력하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위로가 그렇다. 위로란 말에 잘했다 아니다란 평가를 할 수야 없겠지만 어쨌든 상대에게 힘이 되어주고픈 상황에서 과연 힘이 되는지 오히려 해가 되는지의 경계가 늘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문득 그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상대방 상태보다는 내 감정에 더 신경이 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당신의 어려움과 함께해요라는 진심이 전해지기도 전에 내가 이러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지난주 경주에서 있었던 ‘심리응급법’ 워크숍은 그런 의미에서 오랜 불안감을 조금은 식혀주었다. 크나큰 사고나 충격을 겪은 이들의 외상후 스트레스를 낮추며 감정적으로 응급조치하는 데 대한 기본 원리와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제대로 위로하고 공감하고 도움을 전하는 데도 나름의 원칙과 방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어버린 매뉴얼이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온 국민을 참담함에 빠지게 한 세월호 사고로, 직접 사고를 겪은 분들이나 그 주위사람까지 정신적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시점이라 마음이 남달랐다.

보고, 듣고, 연결하라. 긴급재난 시 심리응급처치에 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매뉴얼에 담긴 원칙이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가 있는 사람이라면 정확하게 상황을 보고, 고통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결시켜주라는 것이다.

문득 생각한다. 이게 어디 재난 앞에서만 요구되는 원칙일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제대로 보고 듣고 연결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보고, 듣고, 연결하라. 그 바탕은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다. 머리와 가슴을 모두 동원해 함께하겠다는 진정어린 결심이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